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상샬롬 Sep 28. 2021

IMF와 면접비

내가 겪은 사회생활 이야기 6

  1997년, 내 나이 21살 때 IMF사태가 일어났다. 1년 재수를 했기에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 많았던 취업 의뢰서가 뚝 끊겨서 거의 들어오질 않았다. 보통은 많은 취업 의뢰서들 중에서 대충 골라서 이력서를 여러 군데 보내보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면 면접을 보러 다녔다.


  특히나 대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면 면접비라고 5만 원, 또는 10만 원을 받는 쏠쏠함도 있었다. 하지만 IMF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바로 모든 취업활동들이 중단되었다.


  가구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하시던 아빠는 가구 주문이 뚝 끊겼다며 힘들어하셨고 집에서 살림만 하시던 엄마도 동네에서 하는 부업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는 취업을 하지 못한 채 IMF가 터진 그 해가 지난 다음 해 어느 봄날에 졸업을 했다.


  졸업을 하기 전 IMF사태가 터진 몇 달 후 조금씩 취업 의뢰가 들어오자 그나마 겨우 몇 군데에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면접조차 보지 못했다. 1차 서류에서부터 떨어진 것이었다. 회사도 힘들어지지 딱 필요한 인원만 조금씩 뽑았고 그러다 보니 경쟁률이 높아졌고 서류심사부터 까다로워진 것이었다.


  그 당시 내 친구는 대기업 중 하나인 한 보험회사에 사무직으로 취업이 되었는데 IMF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 바로 입사를 하지 못하니 몇 달만 기다려 달라는 통보를 받았더랬다.


  친구와 나는 그 회사는 절대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냥 좋게 얘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6,7개월이 지난 후 입사하라는 연락이 와서 정말 놀랐던 적이 있다. 그날 이후 그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기까지 했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어린이집에 보조교사로 취업이 된 상태였다.


  나는 취업이 계속되지 않자 안 되겠다 싶어 알바라도 하자 해서 벼룩시장 등의 취업 정보지들을 열심히 보았다. 그리고 집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청담동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면접을 보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그때 그 시절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곤로가 참 정겹다

https://brunch.co.kr/@sodotel/429



매거진의 이전글 사무직이라면서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