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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Jun 16. 2020

김치와 멸치볶음 도시락

이런저런 이야기 9

  초등학교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엄마, 나도 이쁜 도시락 싸줘."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다른 친구들 도시락은 반찬도 이쁘게 담아져 있고 맛있는 반찬이 가득했는데 내 도시락은 거의 밥과 김치 그리고 멸치볶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좋아하는 남자애랑 집에 가는 길에 학교 계단에서 장난치다 내 도시락 가방이 굴러 떨어지면서 빨간색 김치 국물이 퍼져 나오는 걸 보이고는 얼마나 창피하고 속상했던지.


  철부지 없는 나는 그 도시락이 부끄러워서 가끔 빵을 사 먹고 도시락 반찬과 밥은 버리고 집에 간 적도 있고, 도시락을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며 친구들에게 거짓말하고 친구들 도시락을 함께 먹은 적도 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좀 어려웠는데 아빠가 피아노 공장에서 공장장으로  일하시다가 공장이 부도가 나서 사장이 도망을 갔고 아빠가 사장 다음으로 책임자이니 어느 정도 공장 정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가구공장으로 이직해서 다시 새로운 기술을 익히셔야 할 때라 수입이 엄청 적었다.


  그래서 엄마는 하루아침에 공장장 사모님이랑 호칭을 듣다가 집에서 부업을 해야 하는 처지로 바뀌었고 엄마도 나름 아끼면서 살림을 이끌어야 했기에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그런 중에 딸이 도시락 이쁘게 싸 달라는 소리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셨을까.

안 해주는 게 아니라 못해주셔서 말이다.


  몇 년 전 우리 딸내미와 함께 친정에 놀러 가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도시락 얘기를 하니 그때 정말 이쁘게 도시락을 싸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고 많이 속상해서 몰래 눈물을 훔치셨다고 하는 소리에 나도 눈물이 왈칵.


  그런데 옆에서 우리 딸내미가 엄마와 내 얘기를 들었는지

"나는 할머니 멸치반찬이 제일 맛있어. 빠삭하고 고소해."라고 하는 것이었다.


  왜 맛있냐고 묻자 딸은 엄마가 동생을 임신해서 조산기로 3개월을 입원해서 한 달을 외할머니 집에 와있었을 때 할머니가 해준 반찬중 멸치볶음이 진짜 맛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하고 고소한 게 자기 입맛에 딱이었단다.


  딸의 얘기에 엄마와 나는 마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제는 웃으면서 추억으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김치와 멸치볶음 도시락이 좋다. 그리고 엄마의 그 도시락이 그립다.



내가 만든 꽈리고추 멸치볶음은 매워서 싫은 게냐,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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