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님 제발 가세요

이런저런 이야기 10

by 항상샬롬

서울 토박이인 나는 아빠의 직장문제로 경기도 파주 신도시로 2002년 이사를 갔었다. 그때 내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어느 날 일산 시내 쪽에서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서있는데 마침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면서 맞은편에 집으로 가는 버스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일산 시내에서 파주 신도시로 가는 버스라 30분 이상마다 배차간격이기에 꼭 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반대편에 다 도착했을무렵 '어... 어...' 내 몸이, 아니 내 다리가 순간 멈춰지지가 않았고 맞은편 인도에 거의 도착했다고 느끼는 동시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눈앞에 있는 기다란 신호등 본체 중간쯤에 머리를 쿵 박으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고 신호등 본체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


"헉."

"어머."

"어이구."


머리에서 별이 보인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너무 창피해서 빨리 벌떡 일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구두 하나는 이쪽에 가있고 손에 쥐고 있던 쇼핑백은 저쪽에 가있었다. 그날따라 치마를 입고 가서 스타킹 한쪽은 올이 쫙 나가 있었고 무릎 쪽에는 자잘한 구멍까지 뚫려 있었다. 주저앉으면서 치마가 안 올라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속으로는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음) 태연하게 구두를 신고 쇼핑백을 들고 인도 위로 올라가려는데 내가 타려고 했던 그 버스가 아직도 서있었다. 버스 옆을 지나가는데 버스기사님이


"아가씨, 얼른 타요. 괜찮아요? "

"네..... 기사님 출발하세요. 전 다음 차 탈게요."('제가 미친 듯이 뛰다가 주저앉은걸 다 보셨군요.')

"어이구 아가씨가 하두 열심히 뛰어오길래 기다렸는데, 얼른 타요."

"네.... 감사합니다."('기사님 그냥 가시면 안 되시는 거였나요?')


버스기사님의 과잉 친절함을 절실히 느끼며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에 타 있던 승객들의 표정이 '다 봤다'라는 느낌이었다. 쿨럭.


오늘 버스를 타다가 이 사건이 생각나서 기록해 보았다. 흐흐흐.



여수 놀러 가서 타본 2층 버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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