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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Feb 22. 2017

비 오는 날

지금은 없어진 시간들

비 오는 날이 좋다. 빗물이 타닥타닥 창문을 때리는, 틱틱하며 나뭇잎들을 스치우는 소리가 참 좋다.

한껏 늦장을 부린 아침. 따뜻한 커피의 온기가 고스란히 담긴 머그컵을 감아쥐고선 부릴 수 있는 만큼 여유를 부리며 빗소리를 듣는다. 빗소리로 어느 때보다 조용해진 공간 속에서 온전히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도 좋다.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다른 소리를 낸다. 탱탱하며 철을 튕기는 경쾌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이 든다. 뽀각뽀각 소리를 내며 빗물을 지워내는 와이퍼 소리, 빗물을 가르고 지나가는 다른 차들의 소리도 싫지는 않다.   


어릴 적엔 종종 비가 오면 할 일이 없어도 장화를 신고, 손에는 우산을 들고 나가고는 했다. 고인 물웅덩이를 찾아 들어가서는 우산을 쓰고 쪼그리고 앉아 있고는 했는데 그렇게 듣는 빗소리는 더욱 또렷했고 생생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렇게 빗소리를 들으며 그때 나름대로의 안정감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쯤엔 낭만을 찾는다며 고소한 기름 냄새로 가득 찬 막걸리 집이나 인적이 드문 조용한 카페에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분위기를 안주 삼은 달짝지근한 막걸리에 흠뻑 취하기도, 달콤한 커피 마시며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취하기도 했다.


오늘 오랜만에 들려오는 봄비 소리에 작게나마 여유를 부린다며 커피를 끓여본다. 단골 막걸리 집도, 조용한 카페도, 작은 발에 끼웠던 장화도 없어진 지금. 할 일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조차 없는 우리를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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