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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31. 2017

사람 장사


예전 백수 시절. 거짓말처럼 돈이 똑 떨어진 적이 있다. 당장 내야 할 공과금은 물론 라면조차 사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부랴부랴 알바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종 상관없이 알바비가 당일 지급되는 일이면 됐다. 그래서 찾은 것이 파견업체에서 알선한 편의점 물류센터였다. 


다음 날 출근한 물류센터에는 나 말고도 새로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상황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와 일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을 배우는 건 금방이었다. 해당하는 물품을 컨테이너 벨트 위 상자에 담기만 하면 되는 거라 어린아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9시가 되자 컨테이너 벨트 위로 상자들이 쉼 없이 밀려들어왔다. 그 속도를 맞추기 위해 나 역시 컨테이너 벨트가 되어 움직였다. 


내가 맡은 건 음료였다. 하나하나의 무게는 얼마 안 되지만 적게는 6개, 많게는 12개로 묶인 음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금세 팔과 어깨가 아파왔다. 잠시 쉬고 싶었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내가 멈추면 내 뒤에 있는 사람 모두가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 노가다 판도 전전해 봤는데 이깟 거 못 참을까 싶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단순한 일만 반복하니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12시가 넘었을 거 같은데 시곗바늘은 11이라는 숫자 근처도 가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것도 이런 단순 노동을 하다가 아니었을까.

두 배는 걸려 찾아온 점심시간.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일제히 작업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오늘 첫 출근한 내게 아무도 점심을 어떻게 하라고 얘기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내게 일하는 방법을 알려준 직원에게 물었다. 내가 이곳에서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저기, 점심은 어디서 먹어요?”

그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아서 먹어요.”


뜻을 이해 못해 그가 떠난 뒤에도 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알아서 먹으라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식사 제공은 아니더라도 점심은 어떻게 하라고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럼 그렇다고 묻기 전에 말이라도 좀 해주지. 일찍 알았다고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그래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 겪는 당황스러움은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복잡한 심경을 뒤로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없는 돈을 털어 삼각 김밥으로 허한 속을 달랬다. 남은 시간은 작업장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누워 잤다. 


나는 이틀 만에 파견업체에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아무런 감정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나 같은 놈을 많이 겪어본 거 같았다.

그들이 아쉬워하거나 당황하길 바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내가 일말의 아쉬움도 없는 인간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들이 당황하거나 아쉬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저 6만 원짜리였다. 파견업체가 내놓은 하루 6만 원짜리 물건. 그리고 날 대체할 물건은 많았다. 그들이 아쉬울 건 애초부터 없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나는 취직을 했다. 차가운 삼각 김밥을 먹으며 이력서를 하나 넣었는데 그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새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에서 정해 놓은 구내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물류센터 직원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입사한 회사는 물류센터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물류센터 직원들도 우리와 같은 식당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내게 일하는 방법을 설명했던 직원도 함께였다.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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