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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31. 2017

주말

알람의 통제 없이 자의로 일어나는 아침. 시간을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생각은 이렇게 해도 일어날 의지는 없다. 그래도 되는 날이니까. 

일어나기를 미루고 누워 휴대폰을 뒤적거린다. 유튜브로 동영상을 보기도, 자주 가는 커뮤니티도 기웃대다 나도 모르게 다시 잠든다. 그러다 밥 먹으라는 엄마 말에 겨우 일어나 밥상 앞에 앉는다. 이미 오전보다는 오후에 가까운 시간. 아침인지 점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 타서 책상에 앉아본다. 그렇다고 무얼 할 생각은 아니다. 그저 동네 마실 나온 아이처럼 포털사이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내가 세상에 잠시 무관심했던 사이 세상엔 많은 일들이 일어나 있다. 특히 요즘은 눈 뜨고 나면 큰 사건들이 하나씩 터져있다. 찬찬히 기사들을 읽으며 혼자 웃기도,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배가 출출하다. 적당히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적당히 물을 올리고 적당히 라면을 끓여 다시 책상에 앉는다. 라면을 먹으며 다시 기웃기웃. 어느새 3시가 넘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3시라니. 이럴 때면 나 몰래 누군가가 시간을 빨리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망상도 잠시, 의자를 한껏 뒤로 저치고 책상 위에 발을 올린다. 그리고 읽고 있던 책을 집어 든다. 

배 위에서 책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넘어간다. 귀를 간질이는 종이 소리와 페이지 넘기는 손맛에 취하다가도 금세 졸음이 밀려온다. 책을 덮고 베개만 대충 챙겨 누워본다. 


얼마쯤 잤을까.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단잠에서 깬다. 동네 친구 녀석이다. 액정에 뜬 이름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이내 무음으로 돌리고는 다시 얼굴을 묻는다.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마냥 늘어지는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양껏 잤고 났더니 이미 해는 지고 세상은 어둑해져 있다. 입안이 꺼끌꺼끌해 입맛도 없다. 잠을 그렇게 잤으니 그럴 만도. 그래도 냉장고 앞을 기웃거린다. 심심해하는 입에 아무거나 대충 물려주고 영화나 볼까 싶어 시간표를 확인해본다. 때마침 기다렸던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는 역시 심야라며 혼자 중얼거리고는 간단히 예매를 마친다. 

입고 있던 운동복에 양말만 대충 신고 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다. 씻지도 않은 얼굴과 기름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가볍게 카드 한 장과 휴대폰만 챙기고 집을 나선다. 


영화관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 느닷없이 자괴감이 찾아온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군 죄책감이리라. 하지만 뭐, 괜찮다. 그래도 되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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