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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31. 2017

미운 나이

1년 전쯤. 이직하게 되면서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됐다. 그로 인해 가장 먼저 바뀐 건 생활패턴이다.

나는 새벽시간을 자주 애용한다. 집중이 필요할 때면 주로 밤 12시에서 새벽 2시를 선호한다. 그 시간만큼 조용하고 외부의 간섭도 극히 드문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도, 시끄럽게 지나다니는 차 소리도, 떠돌아다니는 동물들마저 침묵하는 시간. 나는 이 시간을 무척 사랑한다. 하지만 본가, 즉 나의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는 나의 이 소중한 시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신다. 내가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돌아다니고 있으면 “사람은 밤에 잠을 자야 한다.”며 한 말씀 툭 던지신다. 그럴 때면 나를 사춘기 소년쯤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이밖에도 엄마와 함께 살면서 감수해야 하는 게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잔소리다. 어른이 되면 더는 잔소리를 안들을 줄 알았는데 어쩐지 어른이 되고 더 많이 듣는다.


“늦게 먹으니까 살이 찌지.”, “머리 좀 잘라라.”, “신발이 떨어졌는데 안 사니?”, “운동은 통 안 하니?”, “너무 짜게 먹지 마라.”, “나물도 좀 먹고 그래라.”


모든 엄마들의 잔소리가 비슷하겠지만 내가 주로 듣는 잔소리는 이쯤 되는 거 같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지만 여기엔 나도 할 말은 있다.

내가 살 찐 건 늦게 뭘 먹기 때문이 아니고 엄마가 삼시세끼 잘 챙겨 먹여서고 머리는 얼마 전에 잘랐지만 티가 안 날 뿐이다. 신발은 몇 번 사려했지만 원하는 제품이 없어서 잠시 미뤄둔 것이며 운동은 안 하는 게 아니라 허리가 다쳐서 못하는 거다. 물론 음식도 남들보다 싱겁게 먹으며 나물은 이미 한 번씩 다 먹었다. 단지 엄마가 못 본 것뿐이다. 이 사실을 일일이 다 고하지 않아서일까. 내 행동 하나하나에는 엄마의 잔소리가 따라붙는다.

이런 엄마의 잔소리가 싫다면 다시 나가살면 그만이지만 아직 본가에 남아 있는 건 간단한 이유에서다. 이 모든 걸 감내할 만큼 좋은 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엄만 내가 늦게 들어오면 늦게 들어온 대로, 일찍 들어오면 일찍 들어온 대로 끼니부터 물어보신다. 못 먹었다고 대답하면 귀찮을 법도 하건만 말없이 밥상부터 차리신다. 당연하다는 듯이 빨래며 청소를 도맡아 하시며 내가 못 찾는 물건도 내비게이션처럼 척척 찾아주신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본인 일처럼 내 모든 걸 걱정하시니 나 같은 게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겠는가.


그걸 알면서도 오늘도 난 또 잔소리라며 투정이다. 사춘기 소년이 아니라 미운 다섯이 따로 없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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