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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30. 2017

늦은 날

서둘러 준비했음에도 늦었다. 매번 뭔가를 보고 있으면 뭐에 홀린 것 마냥 집에서 늦게 나오게 된다.

집을 나서자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오고 있지?”

  “으응.”


혹여 화날까 지레 겁부터 먹고 늦을 거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서둘러 발걸음을 놀린다.

이런 날일수록 버스는 더 더디게만 움직인다. 나 하나 늦었다고 빠르게 움직여주면 그게 어디 대중교통이겠는가. 속이 타들어가는 나와 달리 여유롭게 움직이는 버스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 덕에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에 나만이 분주하다. 약속 장소는 멀었지만 약속시간은 금세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오빠 어디야?”


넌 벌써 도착한 모양이다. 시간을 보니 벌써 5분 전이다. 시원하게 뻥 뚫린 길을 보며 태연히 말한다. 


  “조금 늦을 거 같아. 차가 좀 막혀서….”


눈치 백 단인 네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전화로는 화내기 싫었는지 크게 숨을 고른다. 


  “알았어. 빨리 와. 추우니까.”


결국 난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예쁘게 드러나 있어야 할 네 보조개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미안.”

  “지금 몇 시야?”


내 사과에도 다짜고짜 시간부터 물어오는 너. 물론 시간을 묻는 질문이 아니기에 난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


  “또 뭐 보다 늦었지? 늦으면 내가 미리 말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이 추운 날 여자 친구를 밖에 세워두고 싶어?”


추우면 어디에 들어가 있으면 될 것을. 아마도 내 못된 버릇을 고치려 일부러 추운 길 위에서 언 발을 동동 구르며 있었으리라. 아무래도 오늘은 단단히 벼른 모양이다.

잔소리는 그 자리에서 한 동안 계속 이어졌다. 저 조막만 하고 앙증맞은 입에서 어찌도 이리 쉼 없이 잔소리가 이어질까. 반성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에 너의 잔소리가 어쩐지 싫지 않다. 하지만 겉모습만은 반성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게 혼나는 사람의 도리다. 이어지는 너의 잔소리에 난 교무실에 불려 온 학생처럼 숙연한 표정을 짓는다.


  “아, 진짜… 결혼해서도 이럴 거야?”


너의 잔소리의 끝은 항상 이 질문이었다. 우린 둘 다 학생이었기에 이 말을 들을 때면 너와 나의 연애가 꼭 어린아이 소꿉놀이 같았다. 하지만 난 너의 그 질문이 좋다. 흔한 사랑한다는 말보다 너의 걱정 담긴 그 말이 참 좋았다. 


  “이제 다 했어? 그럼 이리와.”


그러면서 난 양팔을 벌린다. 넌 그 모습에 뾰룡퉁한 표정을 지으며 못 이기듯 내게 안긴다. 양팔로 내 허리를 감으며, 차가워진 너의 얼굴을 내 가슴에 묻는다. 그리고 투정 부리듯 말한다.


  “왜 대답 안 해? 결혼해서도 이럴 거냐구?”


감싸 안은 내 허리를 흔들어 대답을 요구한다. 난 애써 웃음 지으며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다.


  “아니. 안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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