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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30. 2017

하고 싶은 것


오랜만에 친구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누군가 내게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형.”


동네에서 함께 운동을 하다 알게 된 동생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그만둔 뒤로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던 녀석이었다. 


“한 3년 만인가?”

“그쯤 됐죠?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맨날 그렇지.”


우리는 빠르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학교를 졸업해 벌써 취업을 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처음 만났을 당시만 해도 나는 갓 취업한 상태였고, 이 아이는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어느새 졸업도 모자라 취업까지 했다니 새삼 시간 한 번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구청에 있어요.”

“구청?”

“네. 작년에 시험 붙어서 구청으로 발령 났어요. 이제 일 년 됐어요.”


아, 공무원 시험 봤구나. 이제 스물여덟 밖엔 안 된 아이가 벌써 공무원이 됐다니 한 번에 시험을 통과한 모양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빠르게 진로도 정하고 이미 자리까지 잡았다니 어쩐지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입에선 속과 달리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고 싶은 게 없었어?”


축하한다는 말이 먼저거늘. 공무원이 되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인데, 단지 공무원이 됐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게 없었을 거라 치부해버리다니. 

어리석은 말실수에 사과를 하려던 찰나 그 아이가 씁쓸히 웃어 보였다. 


“모르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게 뭔지.”


자신의 대답이 머쓱했던지 애먼 뒤통수만 긁었다. 


“그래서 그냥 잘하는 걸 하다 보니 공무원이 됐어요.”


운동신경은 조금 부족해도 공부 하나는 잘하는 아이였다. 공부를 하는 것이, 시험을 보는 것이 이 아이에겐 익숙하고 잘하는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구나. 잘 됐네.”


애써 웃는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고 전한 뒤 집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다 문득 예전에 그 아이와 술자리에서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껏 술기운에 흥이 오른 녀석은 말했다.


“이젠 집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걸 찾을 거예요.”


…결국 못 찾았나 보구나.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어쩐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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