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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27. 2017

음식도 조화로소이다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예전 한 지인으로부터 냉면과 고기를 함께 먹으면 맛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꽤나 놀란 적이 있다. 후식으로나 먹던 냉면이 고기랑 어울린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냉면은 차가운 음식이고 고기는 불에 익혀 따뜻하니 이게 어떻게 어울릴 수 있나 싶었다. 

속는 셈 치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냉면에 돌돌 말아 입안에 넣은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차가운 냉면과 따뜻한 고기가 입안에서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니 밥이나 상추와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맛과 재미가 있었다. 음식은 조화라 했거늘 내가 너무 편협했구나 하는 생각에 그 친구가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 친구만의 독특한 식성에서 온 줄 알았던 이 조합도 알고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즐기고 있는 방식이었다. 요즘엔 냉면을 시키면 고기를 주는 곳도 있으니 그 유명세는 나만 몰랐던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짜장면과 식초의 조합도 놀라웠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정말 친구 녀석이 내게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말한 장본인이 먼저 시범을 보이고 나서야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제야 나도 따라 해 봤다. 그런데 웬걸 식초의 알싸함이 짜장면의 느끼함을 잡아주니 이 또한 새로웠다. 단무지에나 어울릴 줄 알았던 식초가 짜장면과 어울릴 줄이야.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따름이다. 


음식이 재료와의 조화가 중요하듯 사람과의 조화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맛 좋은 음식이라 해도 먹는 이와 맞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독이 되기 마련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배탈이 자주 났다. 특히 밀가루 음식에는 민감해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 하면 열이면 여덟은 배탈로 이어지고는 했다. 그렇다 보니 라면은 물론 빵 하나 먹으려 해도 나름의 큰 각오가 필요했다. 세상천지에 맛있는 것들은 죄다 밀가루거늘 고문도 이런 고문이 있을까 싶다.

번데기도 내 몸과 맞지 않는 음식 중 하나다. 일단 번데기를 먹고 나면 온몸에 발열과 함께 두드러기가 난다. 

나는 분명 어려서 엄마가 시장에서 종종 사주는 번데기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커서도 술안주며 간식거리로 종종 먹고는 했는데 어느 날인가 친구 집에서 술안주로 번데기를 먹고 두드러기와 발열로 밤잠을 설쳤다. 

처음엔 단순히 음식을 잘 못 먹어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다시 번데기를 먹고 나서야 ‘아, 내가 번데기 알레르기가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체질이 변했는지 없던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는 한편 다시는 번데기를 먹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안타까웠다. 

배탈이 자주 나는 내게 금기시해야 하는 음식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치맥이다. 차가운 성질의 맥주와 기름진 치킨은 애초에 배탈을 유발하는 음식이다. 치맥을 먹었다 하면 열이면 열 배탈로 이어진다.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다면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인 것이다. 

하지만 바삭한 치킨을? 시원한 맥주를? 이 사랑스러운 것들을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번데기까지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한 여름밤 치맥의 아름다운 맛을 아는 이상 치맥을 포기한다는 건 내 삶의 유희 하나를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배탈은 잠시지만 치맥의 행복은 기니 치맥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린 지 오래다.


짝사랑도 사랑이며 미움 또한 관심이니 부조화 또한 조화 아니겠는가. 생각난 김에 오늘 저녁은 치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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