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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25. 2017

아버지 뭐하시노?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는 호구조사라는 걸 했다. 일괄적으로 나눠준 안내문을 작성하는 식이었다. 안내문은 가족관계는 물론 부모님 학력과 직업, 살고 있는 집의 형태도 적어야 했다. 말이 호구조사지 사실상 부모님 직업 조사이자 집안 재산 조사였다. 


난 항상 부모님 직업을 어찌 써야 할지 고민했다. 고정적으로 일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직업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그때면 아버지는 그냥 자영업이라 적으라고 하셨다. 난 뜻도 모르고 6년 내내 아버지의 직업을 자영업이라 적었다. 아버지는 자영업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를 상대로 6년 동안 거짓말을 한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딴 걸 학교에서 왜 조사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만 해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꼭 거쳐야 하는 관례 같은 거였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조사에 임해오며 내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부모님 직업은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 상대에 대한 배려나 예의라기보다는 내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기에 누군가도 곤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었을 즈음. 신중해야 할 질문이 부모님 직업 말고도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중 하나가 학교였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한 모임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다니는 학교를 물었다. 스스럼없이 학교를 말하자 한명이 “그런 학교도 있어?”라며 반문해왔다. 내가 다니던 학교가 명문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끄럽거나 창피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 수 없는 열등감을 느꼈다.

지금이었다면 그 사람의 질문을 순수한 의도나 예의가 없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만 컸지 정신은 미성숙했던 당시엔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 마냥 그저 얼굴만 붉혔다. 


그 일을 겪고부터는 출신 학교를 묻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학교, 학벌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치부일 수도, 내 아버지의 직업처럼 말하기 곤란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서 다짐 같은 걸 했다. 궁금해 하지 말자. 궁금하더라도 굳이 묻지 말자. 스스로 정한 타인에 대한 작은 예의 같은 거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이 다짐도 다 부질없는 짓이 됐다. 


누가 그랬던가. 사회생활은 학연, 지연이라고. 인사 다음으로 오는 말이 “어디 학교 나왔어요?”였으니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출신학교를 알아가야만 했고, 난 그들의 궁금증을 채워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어린 시절 호구조사 안내문의 빈칸을 채우듯.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 내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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