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부터다. 궁궐에는 ‘너비아니’라는 궁중음식이 있었다. 소고기를 얇고 넓게 저민 후 양념에 재워 석쇠에 구운 음식으로 궁중식 불고기라고도 말한다. 사극에서 하인이 화로에 석쇠를 얹고 고기를 굽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너비아니다.
조선시대 서민들은 너비아니를 먹지 못했다. 너비아니의 주재료는 소였고, 소는 농업 중심사회의 조선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노동력이었다. 소를 잡는다는 건 노동력의 상실을 의미했기에 왕이나 양반들만 겨우 먹을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다.
서민들은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부터였다. 당시 일본은 한참 전쟁 중이었는데 전쟁에는 많은 물자를 필요로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죽이다. 일본은 부족한 가죽을 충당하기 위해 식민지였던 조선에 많은 소를 기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조선은 소고기 공급이 늘어나게 된다.
물론 공급은 늘었다 해서 조선인이 쉽게 소고기를 접할 수는 있던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소고기는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인은 일본인이 먹지 않아 버리는 부위인 내장이나 머리를 이용해 요리했다고 한다. 한국에 내장탕이나 곱창구이, 소머리국밥 같은 부속음식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역사적 사료나 문헌은 없다.
풍요로운 소고기의 공급은 조선 내 야키니쿠(焼肉 やきにく) 가게를 늘리는 결과를 낳는다. 야키니쿠는 ‘구운(焼) 고기(肉)’라는 뜻으로 직역하면 불고기다. 지금도 야키니쿠라고 하면 일본식 불고기를 의미하는데 불고기라는 우리말도 이때 탄생한다.
불고기는 야키니쿠의 언어 순화를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비아니와 불고기가 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고기와 너비아니가 같은 음식이었다면 불필요하게 새로운 단어를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야키니쿠를 순화하고 싶다면 너비아니라고 불렀으면 될 일이었다. 궁중떡볶이와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를 따로 나눠서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불고기는 일본 음식인가. 그건 또 아니다. 둘은 엄연히 조리 방법이 다르다. 우리 불고기는 양념에 재워 둔 고기를 조려가며 익히는 반면 야키니쿠는 양념을 발라 불에 굽는 직화구이에 가깝다. 비슷할지는 모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둘은 다른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언어가 사회성 갖는 것처럼 음식도 그 시대 맞춰 변모해 왔다. 그래서 음식의 전통성을 따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불고기와 비슷한 야키니쿠가 한식이냐 일식이냐를 두고 끝임 없이 논란에 휩싸이는 것처럼 말이다.
불고기는 우리나라 전통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불고기는 여전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요리인 것은 틀림이 없고 한국인에게 오래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음식이며 잔치 상엔 없어서는 안 될 메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