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는 깨달았다. 이 모든 일은 운명이 아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지저분하고 냄새 풀풀 나는 돼지도둑 고조할아버지 탓이었다! _본문에서
_루이스 쌔커, 구덩이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거 같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던가. 아이들이 봐서 좋은 책은 어른들이 보면 더 좋다. 이 책도 그렇다.
책은 뚱뚱하고 왕따 당하는 스탠리가 어떤 운명 같은 일에 휘말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소년원인 초록호수캠프에서 구덩이를 파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의 이야기 절반도 스탠리가 구덩이를 파는 내용이다.
책을 꼼꼼히 뜯어보면 여러 교훈들이 담겨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선의에 관한 거다. 선의는 남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그 선의는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때문에 선의는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떤 의도였든.
아버지와 딸이 길을 걷고 있었다. 길 한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거지가 있다. 딸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갖고 있는 돈을 조금 나눠 준다. 거지는 그 돈으로 빵을 산다. 거지가 빵을 산 가게는 조금 전 거지에게 돈을 나눠준 아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이 이야기처럼 스탠리가 베푼 작은 선의는 돌고 돌아 스탠리의 인생을 바꿔 놓게 된다. 선의란 그런 거다.
단언컨대 이 책은 최근에 내가 본 책 중 가장 교육적인 책이다. 이렇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건 이 책은 옳다, 그르다를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거리를 만들어준다. 캐서린 선생님과 쌤 이야기, 스탠리 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 하다못해 양파에 대해서도.
내용 면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고 유치하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여느 소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탄탄한 내용을 갖고 있다.
작은 사건 하나도 허투루 낭비되지 않으며 등장인물이 일회성으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점, 등장인물의 작은 행동하나에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문체도 간결하여 가독성도 좋다.
누군가 내게 재밌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여지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