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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Jun 26. 2018

최은영, 쇼코의 미소

서른 살 여름, 종로 반디앤루니스 한국소설 코너에 서 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안 되는 걸까. 한참을 서서 움직이지 못하던 내 모습을.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은 멀리 있었고, 점점 더 멀어지는 중이었다. 이 년간 여러 공모전에 소설을 투고했지만 당선은커녕 심사평에서도 거론되지 못했다. 그해 봄 애써서 썼던 ‘쇼코의 미소’도 한 공모전 예심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튼튼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달 갚아야 할 엄연한 빚이 있었으며 언제나 경제적으로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가망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포기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던 적도 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울었다.
가끔 글쓰기에 해이해지고 게을러질 때면 그때 그렇게 울었던 나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이생에서 진실로 하고 싶었던 일은 이것뿐이었다. 망상이고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_작가의 말에서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의 등단작인 쇼코의 미소 외에도 6개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땐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황경신 작가의 작품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움과 묘한 감정의 소설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활동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자주 소개된 책이지만 읽지는 않았다. 이번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된 건 큰 행운이라 생각된다.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전에 어떤 소설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니 생각 외로 오래됐으리라. 당시 나는 병적으로 고전문학에 집착하고 있었다.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시대상과 감정, 분위기, 역사적 사실을 조금이나마 작가의 생각을 통해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물론 부질없는 짓이었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정서를 억지로 주입시키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스스로를 달래 가며 억지로 읽은 책은 책이 아니었다. 고전문학을 읽음으로써 좀 더 넓은 사고와 문학의 이해가 깊어질 거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고전문학 읽기를 그만뒀다.


쇼코의 미소는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와 아픔을 우리 세대가 문학적으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 시대가 지고 있는 십자가를 이리도 잘 풀어낸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조금만 더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나는 굳이 고전문학을 읽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책은 크고 작은 시대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상처를 말한다. 여기에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생기는 개인사까지도 직시하려 한다. 상처를 온전히 바라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쇼코의 미소에서 소유는 말한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면서 영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의 깊은 곳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오만이 그 사람들을 얼마나 쓸쓸하게 했을지 당시의 나는 몰랐다.” 꿈을 좇는 건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유는 저자 본인일 것이다. 저자도 소유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자체가 허황된 일이라 생각했다. 노력이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꿈이라는 달콤함에 젖는 것도 잠시 곧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현실과의 타협. 작가의 표현처럼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을 보내는 심정으로 잡고 있던 손을 놓았으리라.


소유는 소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간다. 저자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소유처럼 자신으로 인해 쓸쓸했을 사람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소유의 선택은 작가의 또 다른 선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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