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말했다. <봉순이 언니>를 쓰고 나서 넌 아마 적어도 5년 동안은 소설을 쓰지 못할 거야. 무심히 흘려버린 그 말이 떠올랐다. <봉순이 언니>를 발표하고 5년이 다 지난 올해서야 겨우 소설을 끼적이기 시작한 걸 보면 그 친구의 예언이 밉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시, 앞으로 또 5년을 쓰지 못한다 해도, 나는 <봉순이 언니>가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아니라, 1960년대의 내 가족, 내 동네, 우리 서울과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 불러낸 노래들이었고, 나는 다만 운이 좋아 그것을 기록할 영광을 얻었을 뿐이니까.
당신이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 안에 있는 당신의 한 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고. 나는 이제 봉순이 언니 같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더도 덜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가여운 영혼들, 오늘 밤 이곳 운교리에 뜬 별처럼 실은 소중하고 경이로운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이 여름 내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_작가의 말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이다. 예전 몇 번이나 작가의 소설을 읽으려 했지만 한 두 차례 시기를 놓치자 영영 그 기회를 잃어버린 것처럼 접하기 어려웠다. 얼마 전 산본 알라딘에 방문하면서 이번에야 말로 읽어보리라 마음먹고 구입한 책이었다.
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 식모로 함께 살았던 봉순이 언니 이야기를 작가의 회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기구한 운명의 봉순이 언니에 대해 화자는 6살 짱아의 시선과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안쓰러운 봉순이 언니의 삶도 삶이지만 6살 때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작가의 기억력에 더 놀랐다.
작가의 책들 중 굳이 봉순이 언니를 선택한 건 오로지 제목 때문이었다. 봉순이 언니. 무언가 따뜻하고 서정적인 책일 것만 같은, 그런 순박한 제목. 하지만 그건 나만의 바람이었는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넘기자 흡사 전쟁이 끝난 후 찾아오는 공허함처럼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녀가 살던 동네를 서정적으로 풀어내지만 종반에 가서 봉순이 언니의 기구한 삶을 이야기할 때 즈음 그녀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구렁텅이에 동화되어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화자인 짱아의 감정 변화에 따라 내 기분도 덩달아 널뛰었다. 짱아가 슬퍼할 때 나도 함께 슬퍼했고 짱아가 웃었을 땐 나도 웃었다. 묘사도 뛰어나 책을 손에 잡을 때마다 마치 나도 아현동에서 짱아와 함께 봉순이 언니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처럼 몰입해서 읽었다. 빠른 시일 내에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 봐야 할 거 같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신다면 개정판 작가의 말을 꼭 한 번 읽었으면 좋겠다. 그곳에 봉순이 언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