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冷麪). 한국 전통음식으로 차게 먹는 국수의 일종이다. 주로 메밀로 면을 내어 육수나 고추장 양념에 비벼먹는다.
냉면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600년대 쓰인 장유(張維)의 ‘계곡집(谿谷集)’에는 직접적으로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조선시대인 1849년(헌종(憲宗) 15년)에 작성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냉면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 대표음식으로 냉면을 꼽지만 냉면은 사실 겨울 음식이다. 냉면을 여름에도 먹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시대인 일제강점기부터다. 그 이전에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계절 음식이었다.
여러 문헌에서 냉면을 겨울에 먹었던 이유를 온돌에서 찾고 있다. 온도 조절이 어려운 온돌 때문에 뜨거워진 방에서 열을 식히기 위해 별미로 먹은 것이 냉면이라는 것. 이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는 조금 다르다.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냉면 육수를 동치미로 사용했다. 동치미는 물김치로써 차갑게 먹었을 때 제 맛을 낸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동치미가 가장 맛있을 시기는 겨울이었고, 그 시기에 맞춰 냉면을 먹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냉면을 여름에 먹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이후부터다. 인천과 부산이 개항하면서 항구를 통해 제빙기가 한국에 처음 들어오게 된다. 여름에도 동치미 즉, 냉면에 얼음을 띄워 차갑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냉면은 국밥과 더불어 서울에서 인기를 끌게 된다. 그 인기는 냉면이라는 이름의 소설이 생길 정도였는데 1926년 12월 1일 ‘동광’에 실린 김량운(金浪雲)의 소설 ‘냉면(冷麪)’이 그것이다.
순호는 한편 뷘자리에 털석 주저안잣다. 몸을 기대고 주저 안즈매 그는 맥이 하나도 업시 착 까란즈며 몹시 시장함을 깨달앗다. 그는 무엇을 먹고 시픈 생각이 낫다. 무엇을 먹으리라 하고 생각하매 배는 더욱이 고프고 긔운은 더욱이 업섯다. 그는 양복주머니에 너흔 돈 봉투가 그대로 잇는지 업는지 만지어 보면서 종로 근방에 나리어서 냉면을 한 그릇 먹으리라하고 생각하엿다 한즉 저육과 채로가신 배(梨)쪽과 노란 게자를 우에 언즌 수북한 냉면 그릇이 먹음직하게 눈아페 보이엇다. _동광 8호 냉면에서
제빙기 덕분에 여름에도 냉면을 먹을 수 있게 됐지만 냉면은 여전히 한시적인 음식이었다. 냉면의 맛을 좌우하는 동치미 때문이다. 동치미는 겨울에 담가 숙성해야 맛이 좋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여름에 담근 동치미는 맛이 좋을 리 없었다. 그래서 겨울에 담근 동치미가 떨어지면 더 이상 냉면을 먹을 수 없었다.
냉면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었던 것은 1920년대 ‘아지노모도(味の素)’가 등장하면서부터다. 아지노모도는 일본의 화학조미료로 여름에 담근 동치미라 할지라도 이 조미료 한 숟갈이면 겨울에 담근 동치미 못지않은 감칠맛을 낼 수 있었다. 1930년대에 들어 아지노모도가 점차 보편화되면서 냉면도 계절 상관없이 먹을 수 있게 됐다. 더불어 한반도에 화학조미료의 시대가 열린 때이기도 하다.
지금 냉면은 겨울이 아닌 여름철 별미다. 개인적으로도 날이 추워지면 따뜻한 국밥이 생각나지 몸이 덜덜 떨리는 냉면이 먹고 싶지는 않다. 가만히 있어도 추운데 굳이 찬 음식을 먹어 더 춥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이 엄동설한에 굳이 냉면을 챙겨 먹었던 것은 나름대로 겨울을 즐기는 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역시 겨울에는 찬 냉면이지!”하면서 말이다. 사실 맛있는 음식 앞에 추위가 뭔 상관이겠는가. 이열치열(以熱治熱)란 말도 있는데 겨울에 먹는 냉면도 나름의 별미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따뜻한 아랫목에서 먹는 냉면도 썩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