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잎지던날 Dec 13. 2018

도시락은 음식을 특별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도시락을 좋아한다. 집에 흔히 있는 음식도 도시락에 담기면 뭔가 특별해지는 느낌이다. 거기에 한정된 반찬에 맞춰 밥을 먹는 게 어쩐지 재밌다.

도시락을 먹을 땐 밥과 반찬 간의 신중한 조율이 필요하다. 집에서야 어느 한쪽 부족해도 별 문제가 안 되지만 도시락은 상황이 다르다. 도시락은 대부분 집이 아닌 장소에서 먹기 때문에 조율에 실패할 경우 맨밥만 먹게 된다거나 반찬만 먹어야 하는 사태를 초래한다.

많으면 남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으로 고스란히 가져가야 하는 수고로움과 싸준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도시락을 먹을 땐 밥과 찬,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함이 필요하다.


내가 도시락을 좋아하게 된 건 학창 시절의 영향이 크다. 요즘은 급식 때문에 도시락 먹을 일이 좀처럼 없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적만 해도 한 손엔 항상 도시락 가방이 들려 있었다. 계절에 따라 도시락의 차이는 있지만 학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도시락을 챙겨야 했다. 그래서 학생이 있는 집 대부분의 아침은 도시락을 싸는 풍경으로 시작됐고, 우리 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도시락에는 조금의 건성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평소 음식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던 엄마는 작은 밑반찬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셨다. 당연히 인스턴트는 절대로 안 되고 반드시 본인 손에서 만들어진 음식만이 내 도시락에 담길 수 있었다. 덕분에 난 그 흔한 소시지나 햄 반찬을 먹어본 적 없다.


엄마는 반찬이 겹치는 것 또한 용납 못하셨는데 오늘 싼 반찬은 절대 다음날 도시락에 등장하는 법이 없었다. 이유야 매일 같은 걸 먹으면 질린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평소 엄마의 신념도 반영됐으리라.


지금도 도시락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네 도시락은 허투루 싸 준 적 없다.”라며 자랑스러워하신다. 물론 나도 엄마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엄마의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나는 도시락을 먹는 일이 언제나 즐거웠다. 도시락을 열기 전 어떤 반찬이 있을지 상상하는 건 행복한 일이었고, 시크릿 박스를 여는 것처럼 설렜다.


그렇게 도시락을 좋아하면서도 난 도시락을 참 많이도 잃어버렸다. 1년에 한 번씩은 잃어버렸는데, 꼭 비싼 보온 도시락만 골라 잃어버렸다. 대부분 학교가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다 그대로 귀가하는 경우였는데 뒤늦게 놓고 온 걸 깨닫고 다시 운동장으로 달려가 보지만 도시락이 제자리에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덕분에 난 매번 엄마에게 혼이 났고, 엄마는 매년 도시락을 사야 하는 수고를 겪었다.


도시락을 싸는 게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대충 싸도 먹는데 지장은 없지만 도시락은 어김없이 볼품없어진다. 먹는 사람의 취향은 물론 건강까지 신경 쓴다면 어느 반찬 하나 허투루 쌀 수 없는 게 도시락이다. 국물이 많은 음식은 안 되며 냄새가 심한 음식도 안 된다. 쉽게 상하는 음식도 안 되고, 식으면 맛이 떨어지는 음식도 안 된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정성껏 하나하나 음식을 담아내면 그제야 먹음직스런 도시락이 된다.


도시락에 담긴 음식은 대부분 평범한 것들이다. 오늘 아침에도 먹었던, 저녁에도 먹을 음식들이다. 다만, 담는 이의 마음이 온전히 담긴 도시락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평범한 음식도 특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항상 맛있는 도시락을 싸주신 엄마의 사랑과 정성에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냉장고야 부탁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