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다급한 연락이 왔다. 친구 녀석이었는데 급하게 주방에 사람이 필요하다며 잠시 일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나는 집에서 먹고 노는 백수의 신분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도 많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음식관리였다. 난 음식이나 식자재가 의외로 잘 상한다는 사실을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직접 쓰레기통에 버리며 몸소 깨달았다.
한 번은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들이닥친 적 있다. 손님들은 고추장찌개를 주문했고 주방에서는 자연스레 전날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와 육수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다. 보글보글 찌개가 끓어오르고 간을 보기 위해 맛을 보자 시큼함이 입안에 돌았다. 음식이 상한 것이었다. 아마도 감자를 넣고 예비 조리를 해놨던 육수가 무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게 쉬어버린 것 같았다. 전날 힘들게 만들어 냉장고에 고이 모셔놨던 육수였는데.
애석하게 쉬어버려 더는 끓일 수 없는 찌개를 잠시 멍하니 바라만 봤다. 다시 끓이려 해도 20분 이상은 걸리는데.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이 어떤 사람들인가. 여유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에게 20분은 그냥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최선은 사실대로 말하고 양해를 구하는 수밖엔 없었다. 염치를 무릅쓰고 손님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손님들은 결국 가게 문을 나섰다. 난 전문적으로 요리를 하는 사람도,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가게를 나서는 손님을 보며 왠지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따랐다.
이후에도 종종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이나 재료는 종류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상했으며 그럴 때마다 매번 정신없는 근무시간이 이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퇴근시간이면 어김없이 ‘이거 또 내일 상하는 거 아냐?’란 걱정이, 출근길에는 ‘상했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뒤따르고는 했다. 싱크대에 얼음을 잔뜩 담아 냄비를 통째로 넣어보기도, 냉장고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보기도 했지만 내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음식들은 어김없이 상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이런 홍역을 앓고 나서 내가 얻은 교훈 있다면 우습게도 ‘냉장고는 만능이 아니었다.’라는 사실이었다.
집에서는 먹다 남은 음식도 냉장고에 넣으면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가게의 식자재들은 손도 안됐음에도 쉽게 상하고 쉬어 버렸다. 그때마다 난 냉장고가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냉장고 문제가 아니라 음식 저마다의 관리법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냉장고에 쳐 박아서 생긴 일이었다.
또 하나 얻은 교훈이 있다면 ‘걱정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였다. 벌어질 일은 아무리 걱정한다 해도 벌어진다. 지금 당장 걱정한다고 해서 내일 상할 음식이 갑자기 신선해지지는 것도 아닌데 쉬는 날까지 걱정을 하며 보냈는지 모르겠다. 물론 무책임하게 ‘될 대로 돼라’ 식은 옳지 않지만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더더욱 옳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 내게 필요했던 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아닌 혹여나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의연한 태도와 여유였다. 걱정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머지않아 새로운 직원이 뽑히면서 나는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쓸데없는 걱정도 끝이 났다.
알바를 그만두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집 냉장고 음식이 상하지 않았던 건 그만큼 엄마가 불철주야 음식관리에 신경 썼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냉장고에게 모든 걸 맡겼으니 관리가 제대로 됐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