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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Dec 21. 2018

호떡은 훌륭한 전투 식량이었다.

호떡은 겨울철 흔히 먹을 수 있는 간식으로 밀가루 반죽 속에 설탕을 넣고 납작하게 구워낸 음식이다.

호떡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건 임오군란이 있던 1882년 화교를 통해서다. 당시 호떡은 지금처럼 설탕을 넣어 만든 건 아니었고 밀가루 반죽만을 납작하게 눌러 구운 것이었다. 불리는 이름도 호떡이 아닌 당화소(唐火燒), 화소(火燒), 고병(餠) 등 다양했는데 조선인들은 이를 뭉뚱그려 호떡이라고 불렀다.


호떡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오랑캐가 먹는 떡’이라는 의미로 오랑캐 호(胡) 자를 붙여 호떡이 됐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호두(胡桃, 호도)와 호주머니도 중국에서 들여왔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호떡이 우리에게는 간식으로 더 친숙하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꽤나 훌륭한 전투식량이었다. 만두처럼 밀가루를 찌거나 삶게 되면 수분이 많아 쉽게 변질되어 오랜 시간 보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화덕에 구워 낸 호떡은 수분이 없어 장시간 보관이 가능해 전투식량으로 크게 활용됐다. 물론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교들 사이에서 먹던 호떡은 일제강점기에 들어 급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특히 경성은 설렁탕집과 더불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당시 외식 인기 메뉴였던 냉면이나 설렁탕보다 호떡집이 더 많을 정도였다.


한편으로 이러한 호떡의 인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당시 호떡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화교들이었기 때문에 상권 장악에 대한 걱정이 컸다. 거기에 온갖 사건사고가 호떡집을 통해 일어나니 화교는 물론 호떡집에 대한 감정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떡의 인기는 지칠 줄 모르고 날로 높아져 갔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호떡집은 한 사건으로 종적을 감추게 되는데 바로 만보산(萬寶山) 사건이다. 만보산 사건은 1931년 7월 1일 길림성 만보산 지역에서 중국인들과 이주한 조선 농민들 간에 수로를 둘러싼 충돌로 조선 내 화교를 배척하는 폭동으로 이어지게 만든 사건이다.


만보산 사건으로 조선 내 화교에 대한 악감정은 더욱 깊어졌고 조선인들은 폭도가 되어 집단적으로 화교를 습격하기에 이른다. 중국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것은 물론 운영하는 상점까지 닥치는 대로 파괴하였다. 호떡집 역시 이러한 테러를 피할 수 없었고 경성에 자리잡았던 많은 호떡집들은 불타고 파괴되어 자취를 감추게 된다. 겨울철 쉽게 접할 수 있는 간식이지만 그 이면에는 나름 깊은 사연이 있는 음식인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호떡은 또 한 번의 변혁을 맞이하는데 호떡의 프랜차이즈화다. 부산의 씨앗호떡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다양한 호떡 프랜차이즈가 생기기 시작한 것.

재료에도 설탕뿐 아니라 피자, 불고기, 치즈 등 다양한 호떡이 생겨났고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그러나 계절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이유에서인지 요즘은 이 또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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