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12월. 긴장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유난히 차갑게 언 손을 주머니에 꼭 쥐고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내가 지원한 대학교 정문.
합격자 명단을 적어 놓았다는 대운동장으로 엄마의 팔짱을 끼고 발걸음을 바쁘게 옮겼다.
또각또각 울리는 엄마의 구두 굽 소리가 내 심장 소리 같았다.
매일 허름한 옷을 입고 생업에 지친 엄마도 나의 합격을 비는 의식을 치르 듯 오늘만은 차려입은 듯했다.
“엄마, 떨어지면 어떡하지?”
“떨어져도 된다. 엄마는 그냥 니하고 한 번 대학이라는 데를 가보고 싶어서 나선 거다.”
엄마는 실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나는 대학에 떨어지는 것보다 엄마가 실망할 것이 두려웠다.
특차 전형이라 이번에 떨어진다고 해도 정시로 갈 기회는 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한 번에 입시라는 답답한 터널을 통과하고 싶었고, 그 터널 끝 세상 밖으로 엄마와 손잡고 나가고 싶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운동장이 보였다.
우리도 사람들 속으로 얼른 들어갔다.
대학교 운동장에 대자보로 합격자 명단을 적어놓았던 1996년도를 떠올리니,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 방을 동네에 붙여놓았던 시절만큼이나 아주 옛날 기분이 난다.
가, 나, 다, 순으로 적힌 이름을 따라 빠르게 내 이름의 모음자, 자음자를 찾아 내려갔다.
“엄마, 저기 있다. 내 이름! ”
“어디, 어디, 어디”
흥분한 엄마는 발을 동동 굴리며 대자보에서 열심히 내 이름을 찾았다.
“있네, 아이고, 잘했다. 진짜 잘했다.”
하시며 나를 얼싸안고 감격에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누가 보면 서울대라도 합격한 줄 알만한 감격 세리머니였다.
엄마는 그때 마흔이었다.
엄마는 나보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한 평생을 힘든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순간이 많았을지 이제야 조금 짐작이 된다.
중학교 때 가정 형편 걱정에 여상에 진학해서 빨리 취업해야겠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너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여자도 배워야 한다.”
는 말로 일축하며 내 생각을 다잡아주셨다.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엄마의 태도에 나는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비장함을 느꼈고,
엄마와 합격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엄마 덕분에 내 청춘의 한 복판에 대학의 푸른 캠퍼스가 있었고, 후회 없이 누렸다.
엄마는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대학을 딸이 다닌다는 것을 뿌듯해하셨다.
손에 물 마를 날 없었지만, 당신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늘 웃음으로 뒷바라지해 주셨다.
그러나, 여자가 대학을 나오면 당신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란 확신에 찬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 이후의 내 삶은 녹록지 않았다.
취업한 회사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되기도 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회식 자리에서 윗사람에게 술을 따르게 하기도 했다.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남자들보다 못한 점이 하나도 없었는데, 사회로 나가니 남자들보다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졸업 후 취업한 회사에 마흔이 넘은 여자 차장이 한 명 있었다.
여자들 중에는 가장 높은 직급에 있는 직원이었다.
그때까지 그 여자 차장은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결혼하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것 같아서 아직 결혼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농담으로 듣고 웃어넘겼는데, 내가 마흔 넘게까지 살아보니 그 여자 차장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알 것 같다.
지금은 기업에서 여자가 결혼했다고 나가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
어린이집도 잘 돼 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여자들이 아무 걱정 없이 일 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다.
하지만, 여자들은 점점 결혼을 하지 않고 있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지는 않지만,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많은 여자들이 있다.
나라에서 육아 장려금도 매달 넣어주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출산율의 나라가 되었다.
내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던 2000년대 초반에서 20년이 더 지났다.
여자들도 학교 다닐 때처럼 남자들만큼 능력을 펼치게 해 달라고 여기저기서 말하니 이것을 ‘페미니즘’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 해 별난 여자 취급을 한다.
2016년에 출판된 ‘82년 생 김지영’은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여자들이 차별받고 있음을 이야기한 소설책으로,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은 여자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에 공감한 여자는 페미니스트라는 별난 꼬리표를 붙일 정도로 페미니즘의 대표 책이 되었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만들고 낳은 아이는 여자 몸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오롯이 여자의 책임이 된다.
김지영도 출산과 육아로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고 알 수 없는 정신병까지 앓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임신과 출산으로 단절된 여자의 경력은 공무원 직군이 아니면 연결되기 힘들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공무원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나라가 되기도 했다. 밤낮없이 공부해서 대학 가고, 모두 공무원이 되기 위해 또 공부한다. 그래야만 계속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김지영도 일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었으면 그런 이상한 병까지는 안 걸렸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에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은 가영이 엄마가 등장한다.
‘82년 생 김지영’의 동화 버전인 것 같은 이 책은 초판이 2012년인데,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인데도 오래된 이야기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영이 엄마는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두 딸을 둔 엄마이자,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이자, 5녀 1남으로 태어난 남편의 아내이다.
가영이 엄마도 엄마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이기를 소망하는 여성이다.
미대를 나온 가영이 엄마는 결혼 후에는 전업 주부로 지내다가 친구가 운영하는 화실에 나가면서 가족의 갈등이 깊어진다.
남편은 아내가 밖에서 일을 하지 않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잘 봉양하기를 바라고, 아이들도 엄마가 자신들에게 더 집중해 주기를 바란다.
“엄마만 딱 떼어놓고 생각해 봐.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아들 타령만 하는 시어머니에 냉랭한 남편, 그리고 다섯 명이나 되는 시누이 틈에서 뭐가 좋았겠어? 기회가 있을 때 엄마 일을 하고 싶은 거겠지.” (p.36)
가영이 엄마가 일을 하는 것에 모두가 불만이지만, 큰 딸은 엄마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훤히 꿰뚫고 있다. 그렇다고 큰 딸이 엄마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거나 따뜻한 말로 엄마를 위로 해 주지는 않는다. 남편, 자식, 시누이, 시어머니 누구 하나 지지해 주지 않는데도 가영이 엄마는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가영이 아빠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펼치기 위해 애쓰는 부인에게
“마음을 안 쓰는데 엄마가 좋아질 리 있느냐고. 왜 다른 여자들처럼 얌전히 집에서 살림을 못하는 거야!.” (p.144)
라는 기가 막히는 말로 가영이 엄마에게 비수를 꽂는다.
치매에 걸린 남편의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집에서 모시길 바라는 마음은 자신의 마음속에만 곱게 간직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병간호를 하지 못한다며 부인에게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화니까 인물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 주기 위해 과장했다 싶으면서도, 현실은 동화보다 더 동화 같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동화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결말 부분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화에서 우리는 온갖 갈등과 위기를 극복한 인물이 결국은 기어코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에 익숙하다.
그런데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에 나오는 가영이 엄마는 답답한 남편의 처사에 굴복하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부분에서 남편과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당신이 우리 엄마 생각을 언제 했다고 여기 와서 이러는 거야! 다 필요 없어! 당장 나가! ” (p. 173)
나도 가영이 아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어머니라고. 당신의 어머니가 낳고 키운 것은 당신이지,
가영이 엄마가 아니라고. 왜 늙고 병든 당신 어머니에 대한 책임을 가영이 엄마에게만 뒤집어 씌우냐고.
효도는 당신이 직접 해야 하는 것이지, 부인에게 강요할 일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다.
가영이 엄마는 시어머니 장례를 치른 후에 자신이 원하던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하고, 남편과는 별거 상태로 지낸다.
어설픈 화해를 하고 한 집에서 가족이 알콩 달콩 살았다는 결말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의 엄마는 여자가 대학을 가면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딸로 마흔 살을 넘기며 살고 있다.
내 딸이 마흔이 될 때쯤에 이 동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때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미친 일이 진짜 있을 수 있어? 정말 말도 안 되는 동화잖아.’이다.
2020년에도 말이 되어서 더 마음 아픈 <마흔 번째 엄마의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