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by 나로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긴긴밤> 中-




엄마의 산도(産道)를 통과해 이 세상에 던져진 순간부터 ‘인생’이라는 대모험이 시작되었다. 남들이 보기에 무난하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의 인생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모험’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이 있다. 조금 더 격정적이고, 덜 격정적이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 인생은 누구에게나 모험이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과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나고 자란 사람은 생존 자체가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은 지금 세대에게 ‘나때’ 이론을 펼치며 안온한 삶에 대한 쓴소리를 종종 늘어놓곤 한다.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헬조선’이라 부르짖는 젊은이들이 한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이 들은 밥을 굶주리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것이 꿈에 굶주리는 것이라는 걸 모를 것이다.


역사상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가 된 지금의 2030들은 하루하루가 모험의 연속이다. 그나마 자신의 꿈을 걸고 모험을 펼칠 수 있었던 4050 이상의 세대는 물질적으로 이들보다 덜 풍요했을지는 몰라도 마음은 풍족했던 세대였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가면, 일을 열심히 하면, 저축을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만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가능성이 많았다. 꿈꾸며 열심히 달렸던 이들 덕분에 우리는 경제, 문화, 의료, 소득 등 모든 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했다.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고도성장을 했다.


너무 좋은 세상이라 절대로 죽고 싶지 않을 것 같고, 아이도 많이 낳을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나라,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부모가 되어도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우리 삶이 극한의 모험에 내몰렸음을 알게 하는 단적인 예이다. 자식을 모험 속으로 떠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과 고된 모험을 스스로 멈추고 싶은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다는 것이다.



일상이 모험이 되어 버린 많은 사람들이 <긴긴밤>의 코뿔소와 펭귄의 여정을 숨죽여 따라갔다. 그 여정 속에 자신의 인생을 비춰보았다. 알이었던 펭귄이 태어나고 자라서 결국 바다를 찾게 되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결말의 동화가 이토록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뭘까? 책을 읽어보면 코뿔소가, 펭귄이 내 모습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의 바다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견디며 긴긴밤을 지새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펭귄과 코뿔소를 통해 대리만족을 했을 것이다. 가는 길이 힘들어도 바다가 거기에 있기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긴긴밤을 지새우며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펭귄처럼 말이다.


긴긴밤을 견뎌내며 펭귄은 마침내 바다에 도착했다. 하지만, 펭귄이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바다에 도착하지 못했더라도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펭귄에게 박수로 격려해 줄 것이다.

또한 바다에 도착한 펭귄이 우선은'성공'으로 보일지 몰라도, 거기서 또 '긴긴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전의 '긴긴밤'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바다를 찾는 사이 펭귄은 성장했기 때문이다.

결과야 어찌 되든 노력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딛는 사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얻는것이 분명 있다.


지금 긴긴밤을 홀로 지새우는 것처럼 외롭고 두렵더라도 일단 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지이든 인생이든 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긴긴밤’을 지새우며 괴로운 날을 맞게 되더라도 가다 보면 그 길에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힘이 되기를 바라며 두렵지만 인생의 '긴긴밤'을 기꺼이 맞이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