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두꺼비

친구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 주는 존재

by 나로

하지만 만약 친구를 사귄다면..... 바로 너...... 너 같은 친구였으면 좋겠어.


포항에서 과메기 사업을 하는 남편을 둔 친구가 올해도 어김없이 과메기를 보내왔다. 김, 다시마, 톳, 배추, 봄동, 쪽파, 마늘, 고추, 초장까지 갖춘 완벽한 한 세트였다. 찬바람이 불면 곧 과메기를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설렐 정도로 나는 과메기를 즐긴다. 그런 내 식성을 잘 아는 친구가 올해도 카톡으로 내 주소를 물어왔을 때, ‘또 친구가 과메기를 보내주려나 보다.’ 하며 흐뭇했다. 하지만 마음과 다른 말로 ‘안 보내도 된다'며 손사래를 치고, 결국 친정집까지 두 세트를 주문해 한 세트는 공짜로 받고 한 세트는 돈을 보냈다.


친구가 보낸 과메기 맛은 최고였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들어가서가 아니라, 과메기를 해마다 먹는 과메기 애호가로서 객관적으로 최고 상품인 과메기임을 알 수 있었다. 좋은 과메기는 반질반질한 윤기가 보기 좋게 흐르고, 씹으면 쫀득한 질감에 비린내가 전혀 없다. 친구가 보낸 과메기 절반을 한자리에서 해 치웠다. 과메기를 초장에 콕 찍어 마늘, 고추와 함께 김과 배추에 싸서 입이 미어터져라 넣어도 뱃속에서는 계속 더 넣어달라 아우성이었다.

과메기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 동네에 살면서 등하교를 같이 했다. 택시 운전수였던 친구 아버지 덕분에 '택시 등하교' 라는 분수에 넘치는 호사를 종종 누렸다. 시험 기간에는 같이 도서관에 가서 잠들면 서로를 깨워 주기도 했고, 다른 대학에 진학해서도 종종 만나며 함께 유흥을 즐겼다. 결혼 후 사는 지역은 멀리 떨어져 버렸어도 종종 만나 목욕탕을 함께 가기도 하고, 가족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사람 많이 가리는 내가 30년 가까이 모든 걸 툭 까놓는 친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친구의 넓은 아량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친구는 작년에 늦둥이를 낳아 이제 세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낳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요즘은 늦둥이 재롱에 새로운 행복을 느끼고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화요일의 두꺼비>는 우정에 관한 책이다. 올빼미 조지는 두꺼비 워턴을 잡아서 화요일인 자신의 생일날 먹을 예정이었다. 일주일의 시간을 두고 둘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로 위태로운 날들을 보낸다. 냉정하고 무뚝뚝했던 올빼미 조지는 여우에게 잡아 먹힐 위기를 맞게 되고, 두꺼비 워턴 덕분에 생명을 구하게 된다. 단순히 이 사건만으로 둘이 친구가 된 것 은 아니다.

조지는 워턴과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진 올빼미의 생일날까지 워턴은 탈출을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외로웠던 올빼미는 두꺼비에게 점점 마음의 문을 연다. 급기야 두꺼비 워턴에게 물고기를 잡아주기 위해 개울로 갔다가 조지는 여우에게 잡히게 된다. 그걸 본 워턴은 조지가 자기를 잡아먹기로 한 포식자임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구해낸다. 목숨을 건진 올빼미 조지는 두꺼비 워턴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는 고백을 한다.


누구에게나 친구는 필요하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사람을 새로 사귀는 것을 무척 피곤해하는 내향형 인간이다. 나같이 혼자 도는 바람개비 같은 유형도 친구는 필요하다. 올빼미 조지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더 괴팍해지고 냉랭해졌을지도 모른다. 나도 혼자 있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외롭다고 말하면 불쌍해 보일까 봐 일부러 잘 지내는 척할 때도 있다. 항상 혼자 있기는 싫다.

새롭게 이사 온 이곳에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고, 새롭게 사람을 사귀어 서로의 신상을 파악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 자체가 노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포장해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상대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지 파악하는 동안의 피로감도 친구 만들기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조지와 워턴은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고, 그러다가 어느새 정이 들고, 나중에는 목숨까지 구해 주며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사실 과메기 친구와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고교 시절에 가끔 투닥거리며 눈물바람을 일으킨 날도 꽤 있었다. 그럴 때는 손편지와 달달한 간식을 건네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사과를 하며 마음을 풀었다. 그때는 참 마음이 말랑말랑 했었다. 나이 들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힘든 건, 그때의 말랑말랑 하면서도 우정에 용기 있었던 마음을 잊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올빼미 조지는 '친구를 사귄다면 너 같은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참 담백하고도 용감한 표현이다.

과메기 친구가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서 겨울마다 과메기를 보내 주는 것이 신기하고도 감사하다. 과메기 친구도 나를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마음 따뜻해지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게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과메기를 보며 '영이가 과메기를 좋아하지' 하며 주소를 묻고 택배를 보낸 친구의 마음이 고맙다. 친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간주나무 열매를 좋아한다는 워턴의 말을 잊지 않고 덤불 속으로 몸을 던졌던 올빼미 조지와 친구가 되지 않을 방법은 없을 것 같다. 한 때 자기를 잡아먹으려 했던 존재였다고 할 지라도 말이다.

과메기 친구가 더 보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이 친구에게 오늘은 전화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