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미래 영재 학교에 왜 들어온 걸까? 그냥 당연히 가야 하는 길인 줄 알았어. 합격만 하면 끝인 줄 알았다고...... 바보 이선우. 나는 지금껏 엄마 아빠의 꿈을 좇아 살아온 거야!
<마지막 레벨 업>의 주인공 선우는 수재들만 모인다는 영재학교에 다닌다. 부모가 짜 준 인생의 스케줄을 착실히 살아내던 선우의 유일한 숨통은 가상세계에 들어가 있는 순간이다. 그곳에는 공부도 없고,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도 없고, 걱정도 없다. 현실에서는 왜소하고 소심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지만, 게임 세계에서 선우는 건장하고 용감한 청년이다. 무엇보다도 게임 세계에서는 목표가 분명하다.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 누구와 싸우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부모나 선생님이 알려주지 않아도 선우는 분명히 안다.
게임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 즉각적으로 쏟아지는 보상과 능력치의 상승이 있다. 이번 판을 넘기면 점수를 얻고 어려운 판을 만났을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판을 아슬아슬하게 깨고 나면 조금 더 난이도가 상승한 판을 만난다. 이걸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싶지만, 분명 깰 방법이 존재한다. 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한 문제는 어려워도 얼마든지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긴다. 아무리 ‘노오오오력’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막연하고 막막한 현실의 도피처로 게임을 찾는 이유이다. 게임 산업이 날이 갈수록 거대 산업이 되는 것은 막막한 현실에 기반한 것일 것이다. 현실이 답답하고, 절망적이고,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게임 산업은 더 발전하리라고 확신한다.
<마지막 레벨 업>은 부모에 의해 무한 경쟁에 떠밀려 사는 선우에게 ‘진짜’는 무엇일지 묻는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진짜’ 행복은 무엇이며, ‘진짜’ 너는 누구냐고. 행복하지만 허전한 가상 세계, 아프고 눈물 쏟는 현실 세계 중 어디를 택해야 할지 묻는다. 누구나 선뜻 현실 세계라고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라고 현실의 무게가 가볍지도 않을 것이며, 아이니까 피하지 말고 부딪혀 보라고 강요해서도 안 될 것이다.
공부가 싫다는 아이에게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와 비교하고, 부모도 가지 못한 일류대학을 당연한 듯 아이에게 목표로 삼게 한다. 아이는 나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시작한 진로에 대한 권유와 제안은 어느새 ‘집착’으로 바뀐다. 집착이 분노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며 아이는 부모의 '조건 있는' 사랑에 답답해한다. 연인관계에나 적용되어야 할 기브 앤 테이크가 부모 자식 관계에 적용되는 순간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다 지쳐 증오를 내뿜는다. 애(愛)와 증(憎)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상처 난 마음은 딱지가 앉고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흉터를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단단하게 아물지 않은 흉터는 조금만 쓸려도 다시 상처를 내고, 더 깊은 고름을 만들어 다시 나를 괴롭히고 내 아이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둘째 아이가 영어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했다. 숙제와 시험이 부담스럽다며 거부하는 아이를 달랬다. 영어 공부는 원래 그런 거라고, 나 자신에게 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말을 아이가 납득할 리 없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아는 단어와 문장은 많아졌다. 하지만 영어 학원에 다니기 전에는 영어를 좋아했던 아이가 영어를 싫어하게 되었다. 영어를 싫어하면서 영어를 잘하게 될 수 있을까? 어떤 언어든 그 언어나 문화를 좋아해야 수준 높은 언어를 구사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불씨가 완전히 꺼지기 전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어는 아이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도구가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영어를 못 하면 설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영어를 못해도 잘만 살고 있는데, 아이가 영어를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수십만 원을 들여 영어 학원을 보냈는데 나중에 영어를 잘하지 못하고 영어가 싫다고 하면 본전 생각에 화가 날 게 분명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가 화도 내 보았지만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아이에게 영어학원을 그만두라고 했다. 학원에 알렸더니, 아주 중요한 시기에 그만두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라고 했다. 쉬다가 다시 학원에 오게 될 때는 지금 레벨보다 더 떨어져 있을 거라며 걱정해 주었다. 아이가 다음 레벨을 위해 영어 시험을 치고 단계가 올라가는 것을 게임처럼 행복해하면 좋을 텐데 나도 아이를 보며 답답하다며 하소연했다. 학원 선생님은 이 고비를 부모님이 넘길 수 있도록 힘을 줘야 하는데 아이에게 동조해 포기하도록 하면 아이는 힘들 때마다 포기할 방법부터 찾을 거라고 했다. 영어가 힘들다고 학원을 그만두게 하는 부모는 학원 선생님 눈에 아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조자일 뿐이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영어학원 가방을 메는 아이를 보기가, 내가 견디기 힘들어 좀 더 단호하지 못했나 싶기도 했다. 학원 선생님 말처럼 후회할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만 학교에서 낮은 점수의 영어 시험지를 받고 우울해할 때 지금 학원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자책하게 될 가능성도 많다. 그래도 지금을 사는 아이가 미래의 시험지 때문에 고통스럽게 영어를 배우게 하고 싶지는 않다.
<마지막 레벨 업>에서 선우는 가상의 세계에서 나누었던 우정의 경험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세계는 가상이었지만, 선우가 느꼈던 감정은 ‘진짜’였기에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아이에게 능숙한 영어 구사 능력은 가상 세계이고, 현실의 고통은 '진짜'인 것이다. 아무리 레벨 업을 위해 고군분투해도 완성될 리 없을 영어학원에서 빠져나온 아이는 편안해 보였다. 편안한 아이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진짜’를 찾고 자발적으로 도전하지 않은 레벨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부실 공사 건축물에 불과할 거라고 나 자신을 안심시켜 본다.
아이는 레벨업을 위해 자기의 속도와 방법을 찾을 거라 믿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