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갈나무 숲에서 봄이를 만났다

통일은 여전히 멀었지만

by 나로

북한 사람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큰맘 먹고 중국 베이징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여행을 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신나게 떠들었다. 서른 시간이 넘는 기차 여행 시간 동안 할 일은 딱히 없었다. 수다를 떨다가 무언가를 먹다가 잠을 자곤 했다. 기차 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 앞에 앉은 30대 중반쯤 보이는 아저씨가 “남조선에서 왔어요?”라는 선명한 북한 억양으로 물었을 때 너무 놀라 숨을 흡 들이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끼리만 알아듣는 한국말로 신나게 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사람이었다. 중국에는 조선족도 많고, 북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실제로 대화를 나눠 본 것을 그때가 처음이었다. 행색은 피곤해 보였지만 친절하고 순박했다. 나는 북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범죄가 되지는 않을까,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있지는 않을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공항에서 잡혀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앞에 앉은 북한 아저씨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릴 때부터 줄곧 받아온 반공 교육의 효과는 대단했던 것 같다. 북한 공산당은 무조건 나쁜 놈이라는 등식을 머리에 넣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앞에 앉은 북한 사람이 나빠 보이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지갑 속의 딸아이 사진을 자랑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평범한 아빠처럼 보여서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잎갈나무 숲에서 봄이를 만났다>에 나오는 옥련이는 탈북민이다.


개마고원 옥련산 근처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다. 여름이라는 풍산개를 키우고 봄이라는 아기곰을 돌보며 살던 아이다. 옥련이의 엄마는 옥련이를 낳고 얼마 안돼 죽고, 옥련이 아빠는 조국에 죄를 짓고 종적을 감추었다. 부모가 없는 옥련이는 불쌍할 만도 한데, 할머니의 사랑과 이웃의 관심, 풍산개 여름이와 아기곰 봄이가 있어서 매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죽어가는 아기곰을 보자마자 어떻게든 돌보며 키우려는 대담한 옥련이는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를 잃은 자신과 아기곰을 동일시했다. 할머니에게 돌봄을 받은 것처럼 옥련이는 아기곰을 돌본다.


탈북민 동화에서 북한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아이를 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동화는 북한에서 힘들었던 아이가 목숨을 걸고 탈출하고, 남한에 와서 차별을 받지만, 꿋꿋하게 이겨내는 스토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동화는 북한에서 삶을 동정하지도 않고, 대한민국의 삶을 찬양하지도 않으며, 어느 쪽의 삶에도 어설픈 위로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험난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살아야 하는 옥련이는 심심할 틈이 없다. 길고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에 할 일이 참 많다.

감자, 옥수수, 조 귀리, 메밀, 콩을 거둬서 갈무리하고, 염소 먹일 풀을 말리고, 메주를 만들고, 땅이 얼기 전에 구덩이를 파서 김장독을 묻어야 한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아궁이를 손보고, 땔나무를 하고, 장작을 사들이는 거다. 이곳에선 굶어 죽는 사람보다 얼어 죽는 사람이 더 많다.(p.52)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옥련이의 육체와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할머니다.

“옥련이래 아매 말 명심하라. 홍옥련이도 담자리 꽃나무처럼 몸속에 얼지 않는 피가 흐른다.”(p.82)

옥련이는 할머니의 말을 명심했는지 대한민국에 와서 방금주라는 탈북민 친구도 사귀고, 아빠와 무난하게 적응한다.

통일이 되면 귀 찢어진 곰을 만나 하루 종일 놀고 그다음 날 또 놀고 그 다음다음 날 또 놀 거다 (p.96)

옥련이는 북한의 삶을 그리워하기는 해도 대한민국의 삶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봄이를 만날 날을 기다릴 뿐이다.


<잎갈나무 숲에서 봄이를 만났다>는 북한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없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북한 사람도 자식을 사랑하고, 키우는 동물을 사랑하고, 부모를 그리워한다는 당연한 인간의 이치를 보여 준다. 그것만으로도 분단된 역사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통일에 관심이 없거나 통일이 되기를 싫어했던 사람도 옥련이가 봄이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미사일을 뻥뻥 쏘아 올리는 북한을 보면 통일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일방적 북한을 향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통일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통일은 멀었지만, 적어도 헤어진 가족이 만날 수 있고, 서로 교류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남과 북에는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여행도 가고, 사업도 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의미 없는 종전선언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발자국을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 남과 북이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6.25 전쟁이 끝난 지도 어느새 70년이다. 6.25를 기억하고 겪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사이 통일에 대한 염원도 옅어지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보다는 일단 분단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만남부터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