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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Nov 25. 2021

내가 신춘문예에 응모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책 내용보다 작가 이력을 더 열심히 보는 편이다. 훌륭하다 싶은 책 작가 이력에 꼭 등장하는 멘트가 무슨 무슨 ‘신춘문예’ 등단이다. ‘신춘문예’는 소설가들이나 시인, 그러니까 내 눈에 어마 무시하게 글을 잘 쓰는 ‘진짜’ 작가인 사람들이 도전하는 관문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 엄청난 작가 등용문에 내가 응모를 해 버렸다. 응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응모만으로 흥분하고 말았다.

‘내가 신춘문예에 응모하다니!’


 내가 응모한 분야는 동화 부문이다. 6개월간 동화작가 수업을 들으면서 동화 몇 편을 습작했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신춘문예에 동화 부문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당연히 신춘문예 같은 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같이 동화 수업을 들은 글벗들이 ‘신춘문예’에 한 편씩 보내보자고 하길래, ‘엥? 우리가 신춘문예를? 어떻게?’라고 속으로 황당스러워했다.

 그런데, 그 말이 마음에 한구석에 자리 잡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났다. 급기야 나는 응모 요강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신문사에서 신춘문예를 개최하고 있음을 알았다. 분량은 동화 30매 내외, 그 정도면 동화 수업을 하면서 몇 편 써 둔 것이 있었다.

 내가 쓴 동화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내 눈엔 재미있었다. (미숙한 초보들이 흔히 겪는 현상이라지요) 용감하게 원고를 출력해서 우체국으로 향했다. 신춘문예를 보낼 신문사 주소를 쓰고 등기 우편을 신청했다. 보내고 나니 신춘문예가 이렇게도 간단한 것이었나 싶었다. 상금을 가장 많이 주는 신문사에 세 편을 몰빵 했다.


 한 시인이 신춘문예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행복한 것은 당선 소식을 듣고 오늘 상을 받을 때까지이고, 앞으로는 답답하고 좌절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꼼지락꼼지락 잘 보내는 법을 터득해야 문학을 오래, 그리고 잘할 수 있다.’

 출판사 공모에 당선되면 책이 될 수 있지만, 신춘문예는 당선이 되어도 신문에만 실릴 뿐 책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당선된 순간의 영광과 약간의 상금이 기쁠 뿐이지 작가로서 힘차게 나갈 수 있는 고속도로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신춘문예 당선은 어두운 밤바다 한가운데 등대 역할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종심이라도 오르면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주는 이정표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동화작가 교실 수업은 이제 끝났다. 기본 개념은 익혔지만, 실전 문제 풀이는 아직 안 해 본 상태다. 내 길이 이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아직 고민해 보지 않으련다. 실전 문제집 첫 페이지를 펴고 내가 서울대에 갈 수 있을 것인가 못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어리석은 수험생은 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우둔한 머리를 가진 학생도 꾸준히 성실하게 공부한다면, 설령 원하는 대학에 못 간다 해도 그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는 인생의 지혜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 해도 신춘문예는 신춘문예다. 이 전통 있는 대회에 응모한 내가 기특하다. 매일 단조롭던 인생의 이벤트 같기도 하고, 선물 같기도 하다. 로또를 사놓고 당첨 발표일을 기다리는 허황되고도 기대에 찬 심정이라고나 할까. 꽝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만의 하나 가능성을 두고 이런저런 상상을 펼치는 것이 재미있다. 신춘문예에 보낸 우편요금 3000원을 로또 구매 비용이라 생각하고, 신춘문예 발표일까지 마음껏 기대하고 상상하고 흥분하고 싶다.

 '내가 신춘문예에 응모하다니!'가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다니!'로 바뀌는 상상을 마구 하는 것은 공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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