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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Nov 27. 2021

주식하는 전업주부의 마음

불장난과 비슷할 지도

  

 주식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이 되었다. 처음 주식을 시작한 건, 작년 코로나 때문에 주식시장이 푹 주저앉았을 때부터였다. 재미 삼아 소액으로 시작한 주식은 점점 덩치를 불려 나갔고, 동학운동에 비견될 만큼 개인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시장 참여로 코스피는 3000을 돌파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그 역사적인 순간의 한 귀퉁이에 매달려 작년에는 나도 운 좋게 50%가 넘는 수익을 냈었다. 50%라고 해 봐야, 투자한 원금 자체가 낙 소액이라 운명을 바꿀 만한 금액은 되지 않았지만, 은행에 적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창업을 하려니 자본금이 부담스럽고, 취직을 하려니 내가 원하는 곳은 나이 제한이나 경력에서 밀렸다. 나가서 뭐라도 하면 돈은 벌 수야 있겠지만, 나를 갉아먹으면서 하는 일은 선뜻 내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 자신과 내 아이의 정서적인 안정과 내 집안의 편안함을 갈아 넣으면서 일을 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몫의 당연한 고단함이라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워킹맘과 독박 육아의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코로나와 이사가 겹치는 상황에서 일을 일순간에 놓았는데도 집안은 잘만 굴러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이 당장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다가 오지는 않았다. 매일 추레한 행색으로 집안 잡부로 생활하다 보니 나를 인정해 주던 사람들이 아쉬워 이따금 쓴 침을 삼키기도 했지만,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았다. 달고도 쓴 워킹맘의 삶을 다 알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식을 더 적극적으로 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더 이상 은행에 저축하지 않고 주식 투자를 했다. 아이들 앞으로 매달 모아주던 돈까지 깨서 주식을 샀다. 주식하면 집안 망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주식은 내 자산을 늘려주었다. 이 모든 게 소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인걸 알면서도 계좌를 보면 뿌듯했다. 내 몸 움직여 버는 돈만이 다인 줄 알고 살았는데, 자본이 돈을 벌게 해 주는 시스템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주식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그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몸이 노동에서 놓여나자 드디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매일 열심히 노동을 하면서도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물론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정신력이 강하지도, 체력이 강하지도 못한 사람이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일기를 썼고, 동화를 썼고, 필사를 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렸다. 마흔 넷이 되어서야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주식 투자로 큰돈은 못 벌어도 내 용돈 벌이는 됐다.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글을 쓰면서 느끼는 무능감을 주식이 어느정도는 덮어주었다.

 

 외벌이 남편을 두고 대출을 안고 있는 전업주부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주식 덕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나 대신 내가 산 종목의 회사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해 주리라 믿으며 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로 금요일 미국 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렇게 큰 하락을 몇 번이나 맞았지만, 맞을 때마다 두렵고 불안하다. 작고도 소중한 내 돈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냥 돈을 다 빼서 다시 은행 예적금에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불쑥 불쑥 솟아난다. 다음 주 월요일 우리 주식 시장은 보나 마나 미국 시장의 하락 여파로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 폰 주식창을 닫아 두고 글을 쓰는 것이다.

주식도 창작이라는 예술도 모두 위험한데, 나는 그 두 개를 동시에 하고 있다. 전업 주부라는 순진한 탈을 쓰고 불놀이를 쉼 없이 하고 있어서 내 삶은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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