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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Dec 21. 2021

또 쓸데없는 것을 사고 말았다

마음이 허한 탓이겠지


‘이건 뭐지?’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의 내용물이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물건을 온라인 쇼핑으로 구매하다 보니 매일 집 앞에 택배 상자가 쌓인다. 나는 꽤 검소한 주부라고 믿고 살고 있는데, 쌓인 택배 상자가 정신 차리라고 하는 것 같아서 뜨끔하다.


 택배 상자의 주소를 확인하고서야 내가 시킨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났다. 오늘 온 택배 상자는 리본핀 만들기 세트다. 나는 리본 핀 만들기를 왜 샀을까? 나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국 답답함이 불러온 충동구매라고 하기에도 쇼트커트인 나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나는 또 쓸데없는 것을 사고 말았다.




 딸이 어렸을 때, 나는 문화센터에서 리본 만들기 공예를 배웠다. 갖가지 리본핀을 만들어 딸아이 머리에 꽂으며 행복해했다. 내가 만든 물건을 아이가 좋아하며 머리에 꽂고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잠깐 그 시절을 떠올리다가 정신줄을 놓고 리본 구매 버튼을 눌렀던 게 생각났다.  요새 이런식의 충동 구매가 늘어간다.


 이제 중 2가 된 딸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닌다. 긴 머리카락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이 보기 싫어 아무리 묶고 다니라고 해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아이가 내가 만든 리본을 자신의 머리에 꽂아 줄 리도 없는데, 반품도 안 되는 리본 끈을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샀는지 모르겠다.

 

나는 머리 땋는 것을 참 좋아한다. 유치원 가는 아이의 머리를 아침마다 촘촘하게 땋아주며 내가 만든 작품을 흐뭇하게 감상하곤 했다. 딸을 낳아서 좋다고도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니 딸도 취향이라는 게 생겨 버렸고, 아이는 땋은 머리를 청학동 소녀 같다고 질색했다. 돌연한 취향 변화에 당황스러웠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너도 컸구나!" 하면서.

딸은 당연히 머리핀도 꽂지 않았다. 내가 만든 머리핀은 학교 벼룩시장에서 인기리에 팔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기의 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 재료값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말이다. 딸이 리본과 멀어지자 나도 자연히 리본 만들기를 그만뒀다.

 

한동안 리본핀 만들기를 손 놓고 있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어린 아이가 꽂은 리본핀에 마음이 동했다.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 집에서 리본핀이라도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리본 재료를 사다 보니 그냥 핀 하나 사서 머리에 꽂는 것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고 말았다. 만들어도 누가 머리에 꽂아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은 리본을 살 때는 미처 하지 못했다. 도착한 택배 상자를 보고, 그제야 내가 이걸 왜 샀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며칠 째 택배 상자는 뜯지도 않은 채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리본핀을 만들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나도 못하고, 딸도 못하고, 줄 사람도 없고, 팔지도 못하는 것을 만들어서 무엇하나 싶다.  나 혼자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고 싶어서 또 쓸데없는 것을 사고 말았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 더 많이 만들어줄걸. 괜한 후회까지 밀려온다.

 “엄마 너무 예쁘다.”하며 머리에 꽂으며 웃는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많이 담아둘걸.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거야.”하며 자랑스럽게 친구에게 자랑까지 하는 아이 모습이 그리워 가슴이 저린다.


그때는 아이가 계속 리본핀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모든 좋은 것이 그렇지만, 아이가 리본핀을 하는 시기는 길지 않았다. 내 마음은 아직도 아이가 리본핀을 하던 시기에 머물러 있는데, 어느새 키가 170센티가 넘는 중 2가 되었다.

 

 육아 대통령 오은영 박사님이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라고 하셨다. 아이는 독립할 준비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데, 나는 아이의 독립 속도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품에 안고 있을 때는 언제 크나 싶어 매일 조바심을 내다가 어느새 쑥 커버린 아이를 보고는 당황스러워하는 내가 너무 못나 보인다.

 

5년 후에는 지금 아이 모습이 미친 듯이 그립겠지. 그리울 때 사진이라도 볼 수 있도록 많이 찍어둬야겠다. 어느샌가 내 앨범에서 아이 사진이 사라졌다. 나는 또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어떤 물건을 사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에 허덕이게 될 나 자신이 그려져 두렵기까지 하다.


오늘은 리본 재료가 담긴 택배 상자를 열어 나를 위해 리본을 만들어야겠다. 짧은 내 머리에 억지로라도 리본을 꽂아야지. 딸도 밖에 나갈 때는 안 해도 집에서는 머리에 리본을 꽂아주겠지. 집에서 꽂을 리본 재료를 사는데 5만 원을 써 버렸다니, 내가 바보 같다. 다이소에서 1000원이면 100개도 넘는 실핀을 살 수 있다는 생각까지 겹치니 더욱 속이 쓰리다.  다시는 이런 쓸데없는 물건은 사지 말자고 다짐해보지만, 자신이 없다.


이제 택배 상자를 열고, 마음 속 추억을 곱게 접어 리본을 만들어 보자. 선물할 소중한 누군가가 떠오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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