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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Jan 06. 2022

신춘문예 낙선 동화

이렇게 쓰면 떨어집니다

 

처음으로 신춘 문예라는 것에 도전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낙선입니다. 혹시나 누군가에게 저의 못난 글이 도움이 될 지 몰라서, 브런치에 올립니다. 이렇게 쓰면 떨어집니다.





<연우 데리러 가는 길>



“오늘은 연경이가 피아노 학원 마치고, 돌봄 교실에 가서 연우 좀 데리고 올 수 있겠니?”


 “내가? 쟤를?”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탁이 당황스러웠다.


 “사장님이 오늘 예약 손님이 많다고 한 시간만 더 일해 달라고 부탁하셔서.”


 올해 학교에 입학한 연우는 쉬는 시간마다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해댔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언제 자기를 데리러 올 건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나는 학교에서 엄마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는데, 연우는 왜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은지 이해가 안 갔다. 엄마는 연우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고 자주 아파서, 마음도 약하다고 했다. 그래서 잘 돌봐줘야 한다고 했다.


 연우 몸이 비실비실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마음이 약하다는 말은 인정할 수 없다. 연우가 얼마나 나를 잘 약 올리는데, 마음이 약한 사람이 세 살이나 많은 누나를 그렇게 잘 약 올릴 수는 없는 거다. 엄마는 연우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엄마는 칼국수 가게 일이 끝나면 학교까지 뛰어간다고 했다. 엄마가 약속한 시각보다 1분이라도 늦으면 연우는 교실 구석에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앉아 있다고 했다. 그런 울보 징징이 연우를 내가 데리러 가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피곤했다. 1분이라도 늦으면 연우는 또 울면서 누나가 언제 오느냐고 선생님께 묻고 또 물을 것이다.


 “연우야, 오늘은 누나가 돌봄 교실에 데리러 갈 거야.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어.”


 엄마는 연우에게 다짐을 받듯 말했다.


 “누나가? 4시까지 올 수 있어? 늦으면 안 돼. 절대로!”


 연우는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알았어. 절대로 안 늦을 테니까 울지 말고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기나 해.”


 나는 연우에게 절대로 늦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평상시는 얄미운 연우지만, 돌봄 교실에서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연우 모습은 어쩐지 조금 가엾다.      



 “연경아, 어서 와.”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피아노 원장 선생님은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하셨다. 나는 연습도 매일 열심히 한다. 그런 나를 원장 선생님은 항상 ‘최고’라고 칭찬해 주셨다. ‘피아니스트 송연경’ 생각만 해도 웃음이 배실배실 새어 나온다.


 “연경아, 오늘 시간 돼? 조성진 피아노 연주회 표가 갑자기 생겼거든. 친구가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됐대. 선생님이랑 연경이랑 가면 어떨까 해서.”


 “조성진이요? 정말요? 우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연주회에 원장 선생님과 갈 수 있다니! 펄쩍펄쩍 뛰면서 좋다고 해야 할 엄청난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저했다.


 “연경이 왜 무슨 일 있어?”


 내 망설임을 눈치채신 선생님이 물었다.


 “연주회 몇 시에 시작해요?”


 나는 연주회가 제발 저녁 시간이기를 바라며 선생님께 여쭈었다.


“4시 30분에 시작하니까 여기서 한 시간 전에는 출발해야지. 오늘은 다른 선생님께 맡기고 일찍 나서려고.”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나는 구석으로 가,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제발 연우 걱정은 하지 말고 조성진 연주회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우 뚜우 뚜우 뚜우

 세 번 연속 전화를 했는데도 엄마는 받지 않았다.


 ‘오늘 예약 손님이 많다더니. 그래도 전화는 좀 받지. 힝.’


 전화기를 들고 오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엄마가 재미있게 잘 다녀오래요.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래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가슴이 쿵쾅댔지만, 조성진을 포기할 순 없었다. 피아니스트가 될 나에게는 징징이 연우보다 조성진이 백배 천배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래 연경아, 잘됐다. 오늘은 피아노 조금만 치고 제대로 감상하고 오자.


 “네.”


 연습을 하는데 자꾸 손에 땀이 나서 건반이 미끄러졌다.


엄마, 나 조성진 연주회 가도 돼?

오늘 원장 선생님이 같이 가자고 하셔.

연우는 어떡하지?


 나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고 기다렸다. 엄마는 문자를 읽지도 못할 정도로 바쁜 것 같았다. 어쩌면 핸드폰을 가방에 두고 꺼내지도 않았는지 모르겠다.


 “연경아, 3시 반인데 이제 슬슬 갈까?”


 핸드백을 멘 원장 선생님이 웃으며 다가오셨다.

 엄마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엄마가 ‘잘 다녀와’ 네 글자만 찍어서 보내준다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쁠 텐데. 나는 원장 선생님을 따라 쭈뼛쭈뼛 일어섰다.

 너무 좋은데, 하나도 안 좋은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맨날 우는 연우가 오늘 하루 더 운다고 뭐 큰일 나겠어?’


 나는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독이며 원장 선생님 차에 올라탔다. ‘붕’하고 걸리는 시동에 화들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하, 연경아, 왜 그렇게 놀라니? 죄라도 지었어?”


 “아, 아, 아니에요.”


 “말까지 더듬고, 진짜 수상한데?”


 원장 선생님은 여전히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나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연경아, 엄마가 허락하셨어?”


 “그게, 사실은….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요. 오늘 동생을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거든요…. 조성진 진짜 보고 싶은데, 처음으로 연주회 가 보게 됐는데…. 연우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니 말이 뚝뚝 끊겼다.


 “그랬구나. 연경아. 조성진은 또 연주회를 할 거고, 다음에도 기회가 분명 있을 거야. 오늘은 엄마랑 연우랑 약속을 지키는 게 우선인 것 같은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선생님.”


 “연경이 마음 다 알아. 다음에 꼭 조성진 연주회에 같이 가자. 그때는 엄마한테도 미리 말씀 드리고. 오늘 갑자기 조성진 표가 생겨서 우리 연경이를 힘들게 했네.”


 원장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선생님 차에서 내렸다.



 ‘이제, 송연우 이 웬수같은 자식을 데리러 가야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 40분이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면 30분은 걸리는데, 20분 만에 가야 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책가방의 덜그럭 소리에 박자를 맞추듯 열심히 달렸다. 한창 달리고 있는데, 책가방이 갑자기 쑥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후두두둑

 무슨 소리인가 싶어 뒤를 보니 내 책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책들이 길 위에 늘어져 있었다. 가방 지퍼가 열려 있었는지도 모르고 뛰다가 책이 모두 쏟아진 것이다.


 “아, 송연우. 정말 싫어!”


 나는 연우가 앞에 있는 것처럼 투덜댔다. 연우가 앞에 있었다면 한 대 쥐어박았을지도 모르겠다. 연우만 아니면, 내가 이렇게 급하게 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가방에서 책이 쏟아져 나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편안하게 원장 선생님 차를 타고 조성진 연주회로 가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연우가 더 미워졌다.


 허겁지겁 책을 주워서 가방에 대충 넣었다. 이번에는 지퍼를 꼭 닫고 다시 달렸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웠지만, 멈추지 않고 달렸다. 학교 정문은 아직도 멀리 있었다.


 “엄마는 연우를 왜 낳아서!”


 나도 모르게 엄마를 향한 원망의 말이 튀어나왔다.

 시계를 보니 3시 55분이었다. 학교 정문까지 가는 데는 5분이 넘게 걸릴 것 같았다.


 ‘후문으로 갈까?’


 후문이 정문보다 훨씬 가깝다. 하지만 후문은 오르막이 심한 길에 있고,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아서 엄마가 정문으로만 다니라고 했다.

 

 왼쪽으로 돌아서 조금만 올라가면 후문이 나오고, 정문은 정면으로 한참 가다가 왼쪽으로 돌아야 나온다. 정문에서 돌봄 교실까지는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야 한다. 후문으로 가야만 4시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후문을 향해 뛰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니 다리가 돌덩이라도 매단 듯 무거웠다.


 “그냥 정문으로 갈걸. 연우 녀석 기다리다 울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나는 툴툴대며 힘겹게 뛰었다. 그때, 검정 개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목줄 없이 학교 주위를 자주 돌아다니는 개였다. 개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간식까지 챙겨주곤 하던, 그 검정 털이 북슬북슬한 개가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개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검정 개가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세상에는 개를 호랑이만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개를 쓰다듬으며 간식을 줄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 아니다. 검정 개는 내가 자기를 귀여워할 거라 단단히 착각한 듯,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저리 가!’


 나는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제발 검정 개가 얼른 내 옆을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검정 개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하늘만 올려다봤다. 눈물 대신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가방을 메고 있는 등은 이미 축축했다.


 검정 개는 내 신발에 코를 대고 마구 킁킁댔다. 심장이 놀라서 신발 위로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검정 개는 신발 냄새를 한참 맡고는 나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어서 저리 가라고! 나 빨리 가야 해!’


 나는 검정 개의 까만 눈에 대고 사정했다.

 

 내 간절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검정 개는 나와 눈을 한 번 마주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길을 내려갔다.


 ‘휴….’


 검정 개는 나를 물지도 않고, 짖지도 않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나는 후문을 향해 다시 달려야 했다.


 “악!”


 한 발 내딛는 순간,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반바지 위로 살갗이 벗겨진 무릎에 빨간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 피를 보자 코끝이 찡했다. 무릎이 쓰라리고 욱신거렸다. 겨우 다시 일어섰다.


 늦어서 달려야 하는데, 연우가 기다리는데, 걷기도 힘들었다. 다리에 힘을 줄 때마다 다친 다리가 너무 아팠다. 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천천히 후문 안으로 들어갔다.


 후문 현관에 있는 벽시계 바늘은 벌써 4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돌봄 교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하나 디딜 때마다 다리가 아파서 ‘아’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혹시 연우 우는 소리가 들리나 싶어 귀를 세우고 한 칸씩 겨우 올라갔다.


 드디어 2층 돌봄 교실이 나타났다. 연우가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나 싶어 복도를 살폈다. 복도는 아무도 없고 조용했다. 교실 뒷문을 살며시 열었다. 혹시 교실 구석에 연우가 훌쩍이고 있나 싶어 구석부터 보았다.


 어디선가 ‘우와!’하는 연우 목소리가 들렸다. 우는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교실 앞쪽에서 젠가의 나무토막을 성공적으로 빼내고 연우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연우는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아주 활짝 웃으며 젠가에 빠져 있었다.


 울고 있을 줄 알았던 연우가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머리 뚜껑이 열릴 것처럼 화가 났다.


 “송연우! 집에 가자.”


 나는 비집고 나오는 화를 겨우겨우 누르며, 조금 크게 연우를 불렀다.


 “연우야, 누나가 데리러 왔네. 이제 집에 가자.”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연우를 다시 불러주셨다.


 “어, 누나 왔어?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나 더 놀다 가면 안 돼? 너무 재미있는데.”


 “뭐라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조성진 연주회도 못 가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돌봄 교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울음이 ‘엉엉’ 소리와 함께 터져 나왔다. 그제야 선생님과 연우가 놀라서 나에게 왔다.


 “왜 울어? 누나, 내가 더 놀겠다고 해서 화난 거야?”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연우가 물었다. 연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다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네가 안 울고 있어서 내가 운다. 왜! 나는 울면 안 돼? 너만 울어야 해? 왜 맨날 너만 울어야 하는데!”


 나는 연우에게 퍼부었다.


“집에 가자, 누나. 그만 놀고 집에 가면 되잖아.”


 연우가 울고 있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근데, 무릎은 왜 이래?”


 연우는 피가 흐르는 내 무릎을 보고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연우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내 무릎을 호호 불었다.


 “저리가!”


 나는 무릎에 머리를 박고 호호 불고 있는 연우를 밀쳐냈다.

     

 연우가 미운데, 미워야 하는데, 미워할 수 없어서 눈물이 계속 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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