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 Jan 27. 2022

벌써 가니?

분명 시어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올해로 결혼 후 17년째 명절을 맞는다.

설, 추석 1년에 두 번 곱하기 17은 34.

이번 명절은 서른네 번째 명절이다.

명절마다 듣지만, 들을 때 마다 오싹하고 적응되지 않는 말

"벌써 가니?"





우리 시부모님은 좋은 분들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할 줄 아시는 분들이다. 남한테 피해 주기 싫어하고, 싫은 소리 들을 만한 일을 하지도 않으신다. 절대로 이상한 분들이 아니다.

이런 좋은 분들과 함께 보내는 명절을 앞두고도 마음이 무거운데, '나쁜' 시부모를 둔 사람은 어떨까 싶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가 모든 재료 준비를 다 해 놓고 기다리신다. 재료를 지지고 볶는 일은 17년 차 주부인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이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일이라 잘 못됐다고 책임 질 일도 없다.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하면 몇 시간 싱크대 앞에 서 있는 건 오히려 보람 있고 즐거운 일에 가깝다.


물론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은 시댁의 안방에서 드러누워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 그런 모습에도 나는 별로 억울한 마음은 없다. 시댁까지 여섯 시간 운전을 한 남편에게 주방으로 와서 같이 일을 하자고 할 만큼 나는 야박한 아내가 아니다. 나는 시댁에 들어오자마자 앞치마를 휘둘렀지만, 누가 시켜서 그런 건 아니다.

내 몸은 자동으로 주방을 향했고, 남편은 자동으로 안방을 향했을 뿐, 누가 시킨 것은 아니다. 그냥 '자동으로'그렇게 됐을 뿐이다.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튀김을 만든 명절 전날 저녁에는 언제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시누네가 와서 저녁을 먹는다. 시어머니는, 내일은 시누가 시집에 가서 못 만나기 때문에,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며 아쉬운 목소리를 내신다. 시어머니는 시누와 같은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매일 본다. 


나는 시누와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다. 그래서 명절 전날도 보고, 명절 당일에도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가 없다. 나도 아쉬워하기를 바라는 시어머니의 눈빛에 나는 고개를 떨구고 열심히 밥만 먹는다.  


시댁에 있는 그릇이 총출동된 성대한 저녁 식사였던 만큼, 설거지 거리는 설거지통에 다 담지도 못할 만큼 많다. '당연히' 그 많은 설거지는 내 몫이다. 나는 이 집의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와 시누가 부지런히 운반해 주는 그릇은 끝이 없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끝이 난다.


나는 인간 식기세척기가 되어 무념무상의 상태로 열심히 그릇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데 집중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무념무상. 오직 그릇의 더러움을 닦는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기름기로 칠갑한 그릇을 한 시간 정도 씻어내다 보면 허리가 쑤셔 온다. 아픈 허리에 집중하지 말고, 유체 이탈을 한 듯 그릇에만 집중해야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다. 그 사이 시누와 시어머니를 비롯해 모두가 앉아서 과일을 먹으면 쉬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면 안 된다.  


깨끗해진 그릇이 산더미같이 쌓인 모습에 애써 만족하며 드디어 앞치마를 풀면, 먹다 남은 과일 몇 조각이 나를 기다린다. 나는 원래 과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과일은 입에 대지 않는다. 절대로 먹다 남은 과일에 빈정이 상해서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과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커피를 한 잔 타서 최대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앉는다. 지극히 상식적인 시댁 식구들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을 뿐이다. 물론 시댁에 내가 혼자서 편히 커피를 마실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커피를 홀짝거린다. 커피를 한 잔 마시기가 무섭게 시어머니는 또 다른 일감을 꺼내 오신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시어머니의 손을 쳐다본다.


“우리 먹을 거 조금만 빚자.”

시어머니는 ‘조금’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못 알고 계시는 게 분명하다. 시어머니는 초대형 양푼이에 각종 만두 재료를 썰어 넣는다. 남편은 이제야 슬슬 눈치가 보이는지 주방 언저리를 기웃거린다.

“나도 같이 만들자.”

“네가 만든 건 못 먹어.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시어머니는 남편의 말을 단칼에 거절한다. 남편은 나보다 바느질도 잘하고, 화장실 청소도 꼼꼼하게 잘하는 사람인데, 시어머니는 남편의 능력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 같다. 그 사이 시누는 내일 일찍 시댁에 가야 한다며 한숨을 쉬며 짐을 챙겨 일어선다. 커다란 양푼이를 보며 ‘언니, 수고해요.’라는 격려의 말도 잊지 않는다.  따뜻한 시누이의 말에 나도 한숨을 쉬고 싶지만, 최대한 숨을 삼키며 시누를 배웅한다.


집에서 직접 만든 만두는 사 먹는 만두와 달리 끝 맛이 개운하고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고 또 먹고 싶다. 나는 내 입에 들어갈 맛있는 만두 맛을 한껏 상상해 내며 열심히 만두를 빚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아마 명절날 어느 집 며느리가 생각해 낸 말이 틀림없다. 앉아서 하는 노동에 좀이 쑤셔 저절로 몸이 뒤틀릴 무렵 만두 빚기는 끝이 난다. 시어머니의 얼굴은 하나도 안 힘들다는 듯 웃음이 만개해 있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여기저기 아프시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 같다. 우리 시어머니의 체력은, 나는 물론 20대 청년도 울고 갈 정도다.

 

명절 전 날의 노동이 한계치에 다다를 무렵, 눈앞에 내 아이들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얼른 씻어. 아직도 안 씻고 뭐해!”

“엄마 화났어?”

그럴 리가. 나는 화가 난 게 아니다. 그저 조금 피곤할 뿐이지. 아이들과 얼른 누워 고된 하루를 마감 짓고 싶을 뿐이다.      


다시 분주한 명절 아침을 맞았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니 시어머니가 벌써 아침 준비를 하고 계신다.

“더 자지. 벌써 일어났어?”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착한 시어머니가 틀림없다. 시어머니보다 늦게 일어난 며느리를 혼내지도 않고, 더 자라고 하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다. 이런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건 진짜 못된 며느리일 것 같다.     


차례상을 차리고, 몇 번의 절을 한다. 우리 시댁은 남자만 절을 하게 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집이 아니라 며느리도 차례에 동참시키는 ‘깨어있는’ 집안이다. 나는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남편의 조상들에게 절을 하고, 다시 차례상을 치운다.


이제 아침을 먹어야 하므로 다시 아침상을 차린다. 아침부터 설쳤더니 배가 고파 떡국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전날 만들어 놓은 만두도 맛이 일품이다. 내가 이렇게 맛나게 먹었으니 힘들게 일했다고 억울할 일이 전혀 없다. 이제 아침 상 설거지만 마치면 친정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가볍다.      

다시 산더미 같은 설거지 동산 앞에 섰지만, 이 동산만 넘어서면 나는 여기를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운이 솟아난다.

 

드디어 마지막 그릇을 헹구고 있는데,

“점심은 간단하게 된장찌개나 끓여 먹을까?”

아침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시어머니께서 ‘간단한’ 점심을 제안하신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치우고 나면 시댁에서 네 시간이나 걸리는 우리 집은 밤에나 도착할 것이다. 할 말을 잃고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남편이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엄마, 우리 이제 가야지. 점심까지 먹으면 언제 처가에 가?”

남편은 꽤 단호하다. 내가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시댁에서 본 남편의 모습 중 가장 듬직한 모습이다.

“벌써 가려고? 오자 마자 가는구나.”

해맑던 시어머니의 얼굴에 순식간에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명절 동안 내가 한 일들은 '벌써 가니?' 한마디에 녹아 사라지고 만다.


17년 째 명절을 마감하는 시어머니의 멘트는 '벌써 가니?'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시어머니는, 단호한 아들의 표정에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 이쁜것 하나 없는 며느리의 집에 가겠다고 설쳐대고 있으니 서운하고도 남을 일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도 누군가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며, 오매불망 기다리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다. 설마 알면서도 매 명절마다 ‘벌써 가니?’라는 말을 하실 리가 없다. 우리 시어머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좋은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설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설을 보내고 나서는 , 시어머니에게  '너도 어서 친정에 가렴. 사돈 기다리실 텐데.'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는 글을 쓰고 싶다.


모두 설 명절 동안 상처 받는 일 없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의 이전글 신춘문예 낙선 동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