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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Feb 17. 2022

평범하게 살다 평범하게 죽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


세상에 태어나서 43년 6개월째 살고 있다. 수도권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두 아이를 둔 주부, 결혼 16년차, 특별히 잘 하는 거 없고,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 보통 체격에 눈에 띄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 성격은 내향적, 친구는 점점 줄어들어 자주 연락하는 친구는 대여섯 명.


40년 넘게 살아온 이력이 심하게 단촐하다. 아직도 뭔가 뾰족하게 내세울 것이 없고, 앞으로도 뭔가를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내 인생이 조금 하찮게 느껴지는 날 지나간 날들을 되짚어 본다. 그때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다른 대학을 들어갔다면, 다른 전공을 했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혹은 한 명만 낳았다면, 그때 그 집을 샀다면, 혹은 다른 집을 샀다면, 그 친구와 싸우지 않았다면, 일을 계속 했다면...... 하는 수많은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지금 와서 그런 가정을 해 본 들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 인생 과거사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인생의 장면 장면에서 후회의 한숨을 쉬다가 안도의 탄식을 번갈아가며 한다. 그런데 어쩐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내 모습은 지금의 모습으로 와 있다.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이 제일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워보이지만, 또 그 내면은 부자연스러웠다. 호수위를 잔잔하게 떠 다니는 백조가 물속에서는 요란한 발길질을 멈추지 않듯 내 삶도 밖으로는 평온하고 안으로는 분주했던 것 같다. 결혼 16년 동안 이사를 여섯 번 했고, 아이를 키우는 중 두 번의 직업을 가졌다가 그만 두었고, 두 아이를 낳는 사이 두 번의 유산을 했다. 매일 평온한 일상처럼 보이는 중에도 전쟁 같은 날들이 있었고, 그 날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선택을 했다.


주어진 하루를 그냥 저냥 살다가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초라한 기분이 들지만, 열 살의 나와 스무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 확연히 다르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는 것을 보면 나는 매일 내 인생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애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가난한 집에서 매일 싸우는 부모를 보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했던 10대, 꿈과 열정은 있었으나 어리석어서 시도하는 일마다 잘 안됐던 20대, 임신 유산 출산 육아로 2세에게 내 삶의 지분을 오롯이 넘겼던 30대, 그리고 이어지고 있는 나의 40대는 나중에 어떤 한 줄로 요약하게 될지 모르겠다.


10년씩 뭉뚱그려 놓으니 간단한 삶이지만, 그 하루하루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매일 어려운 숙제를 하는 것처럼 힘들게 했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았던 것 같다. 


귀인이 나타나거나, 로또에 당첨되거나 하는 내 인생을 반전 시켜줄 커다란 전환점 하나 없이 이렇게 밍숭맹숭한 인생을 살았나 싶기도 하지만, 나는 특별해지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다. 그저 매일 평범해 지기 위해 노력했다.


물 흐르듯 흘러 가는 삶이란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마흔 중반이 되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내일도 내가 살아있을지 죽을지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을 바라는 것은 오히려 욕심처럼 느껴진다. 행운이 벼락처럼 오는 일이 생길수도 있고, 불행이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그렇게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나이가 들고, 늙고,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중에 내 묘비에는 이런 말이 적히면 좋겠다.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죽은 여자가 여기 묻히다. 


많은 '평범'의 조합은 결국 '비범'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내일도 오늘처럼 평범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주 자잘한 선택만을 하며 내 인생이 '평범하게' 조금씩만 바뀌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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