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 Mar 02. 2022

확진자 20만, 그래도 등교를 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


아들이 오늘 학교에 갔다. 거의 석 달만에 등교하는 것이다. 등교 전 가방을 메고 거울로 자기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오늘 자기소개를 할 텐데 뭐라고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깨끗하게 빤 실내화를 신주머니에 넣으며 아들은 활짝 웃었다.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을 후다닥 뛰어내려 갔다.

아들의 설렘에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성큼 왔음이 느껴졌다.


오늘 확진자 수 20만 4천960명. 이 어마어마한 확진자 수에도 학교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겨울이 지났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 2년 동안 아들이 등교를 한 날은 채 100일도 되지 않는다.

등교가 뜸하고,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 기회도 없는 반에 반쪽짜리 학창 시절을 보내는 걸 지켜보는 마음이 불편했다. 다른 아이는 온라인 수업도 집중 잘하고, 야무지게 따라 한다고 하는데 내 아이는 수업시간 동안 내내 딴짓만 하는 것 같고, 자세도 불량해 보였다.      


온라인 수업하는 동안 학원을 더 빡세게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 '잘하는' 아이들만 쭉쭉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잘하는’ 아이가 아닌 우리 아들은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데도 저절로 뒤로 쭉쭉 밀리는 기분에 엄마 마음은 불안했다. 벼락 거지가 아닌 벼락 바보가 될 것만 같았다.


코로나가 터지자마자 전학을 하게 된 아들은 이사 오기 전 친구들과 놀던 때를 그리워했다. 언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거냐고 묻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 '언젠가는'이라고 얼버무리는 날이 이어졌다. 어떤 날은 아들이 안쓰럽다가, 어떤 날은 아들에게 화가 났다가, 감정 조절에 하루의 에너지를 다 써 버리는 날을 보냈다.     


우리는 2년 동안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pcr검사, 백신, 온라인 수업은 눈부신 과학 기술 덕분에 나타난 신기술이다. 우리는 이 기술의 노예가 되어 자유를 억압받는 것을 당연한 근거로 받아들였다. 노예들은 노예가 된 줄도 모르고 서로의 발목에 묶인 쇠사슬을 비교했다. 다른 노예의 발목에 묶여 있는 쇠사슬이 풀어질까 봐 감시했다.

     

임상 실험도 제대로 되지 않은 부자 나라의 거대 자본으로 만든 백신을 연달아 계속 맞으면서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주사를 맞고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고,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불안해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나를 위하고 너를 위하는 일이라 믿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QR체크를 해서 내 개인정보를 샅샅이 알려 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백신을 맞지 않고, 정해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비난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방역 수칙이라는 미명 아래 쉬는 시간도 반으로 줄여 버리고 아이들끼리 이야기도 못 나누게 한다. 친구와 만나고, 이야기하고 노는 것은 아이들에게 숨 쉬는 것만큼 중요한 본능이다. 확진자가 20만이 넘었지만 아이들에게 학교를 빼앗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결석하고 치료받으면 된다.  무식해서 용감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학교 가지 못하고, 친구를 못 만나는 것이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


아이들에게 학교의 문을 열어주는 대신에 자가 진단 키트를 이용해 일주일에 두 번 콧구멍을 찌르라고 한다. 처음 뉴스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었다. 지난 2년 동안 해괴한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 적응이 될만한데도 아이들 콧구멍을 일주일에 두 번 찌르게 하겠다는 정책은 차원이 다른 신선한 해괴함이었다.  강제 사항으로 발표했다가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자 결국 권고 사항으로 바뀌었지만, 교육 정책 입안자의 뇌구조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었다.  


집에서 자가 진단 키트를 해서 양성이 나오면, 검사소로 가서 PCR 검사를 다시 해야 하고, 거기서 진짜 양성이 나오면 결국 감기약 먹고 집에서 치료한다. 아프면 그냥 처음부터 집에서 감기약 먹고 치료하면 될 일 아닌가. 왜 아픈 사람을 이리저리 다니며 검사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학교 e알리미가 수시로 울린다. 코로나 대응 지시 상황이 수시로 업그레이드된다. 이런 걸 만드느라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또 며칠 있으면 확진자 수에 기가 눌려 '역시 등교는 무리였어'라고 하며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될지도 모른다. 자가 진단 키트로 일주일에 두 번이나 콧구멍을 찔러대는데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자가 진단 키트는 확진자 수를 늘릴 것이고, 늘어난 확진자는 집에서 감기약을 먹고 쉴 거다. 아프면 그냥 쉬면 될 것을 힘들게 검사받고 쉬어야 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숫자로 아이들의 봄을 뺏지 말았으면 좋겠다.

친구와 선생님의 눈을 직접 마주치면서 배우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학교 화단에 핀 꽃과 나무에 돋아나는 연두색 싹도 보면 좋겠다.

학교에서 먹은 급식 맛 평가도 듣고 싶고, 친구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사건도 겪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학교는 그저 공부하고 시험 치는 장소가 아니다. 부모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다.

올해는 제발 학교 좀 제대로 가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평범하게 살다 평범하게 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