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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r 16. 2022

육아, 그 미친 사랑의 맛



목구멍 어디쯤이 찢어진 것 같다. 커피를 넘기는 목이 비좁게 느껴진다. 인후통이 주요 증상이라는 코로나에 걸린 건가 싶은데, 아니다. 목이 아픈 이유는 어제 소리를 너무 질러댔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어제 내가 아들에게 광분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걸 옆집, 앞집, 아랫집에서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들으면서 미친 여자가 있다고 신고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귀가 어두운 이웃을 둔 탓인지 다행히도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미친 여자처럼 산란하기만 하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 두껍게 끼인 구름이 내 마음처럼 답답해 보인다.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면 좋으련만.  


자식을 키우는 일은 어렵다. 너무너무 어렵다. 딸 하나 아들 하나인 나에게 아들이 키우기 쉽냐, 딸이 키우기 쉽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어렵다. 겨우 둘을 낳아 키우는데 매일매일 새롭게 어렵다. 어떤 일이든 15년을 매일 하면 능숙해지고 자신감이 붙기 마련인데, 육아는 매일 새롭고 매일 더 서툴러지는 기분이다.     


육아서를 쓴 엄마들은 자유롭게 뒀는데도 아이가 바르게 잘 컸고, 좋은 대학도 갔다고 한다. 블로그나 유튜브에 나오는 엄마들도 아기자기 재미나게 잘만 키우는 것 같은데 나만 매일 괴물이 되는 것 같다. 내 안에 그런 괴성이 숨어 있는 줄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전에는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렇게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 아이에게 실망한 만큼, 아니 그 곱절에 곱절로 나에게 좌절한다.      


아이에게 나는 남한테는 도저히 보일 수 없는 내 밑바닥을 보인다. 남의 자식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척하면서 내 자식에게는 무자비하게 몰아친다. 내 살을 뚫고 이 세상에 온 작은 인간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를 미친 고릴라로 만들었던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빌었다. 자기 전에 다시 한번 용서를 비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상해 있는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꼭 안겼다. 아이의 몽글한 몸을 안자 내 마음도 스르르 녹았다. 잠든 아이의 말간 얼굴을 보자 미안함과 걱정과 죄책감이 뒤범벅되어 아이를 바로 볼 수 조차 없다.




다음날 화이트 데이에 아이는 조그만 초콜릿을 나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관대하고, 세상에서 사랑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나라면, 누군가 나에게 그토록 모진 말을 퍼부으며 화를 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멀리 도망갈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일은 아이의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깝겠지만, 그 본능에 나는 오늘도 감동하고 반성하고 자책한다.  


금박 포장지에 쌓인 동그란 쵸콜릿을 하나 까서 입에 넣자 입안 가득 고소하고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퍼진다. 어쩐지 육아의 미친 사랑의 맛과 닮은 것만 같다.


아이가 준 화려한 금박 포장지 속의 울퉁불퉁한 쵸콜릿, 이토록 쓰면서 달콤한 맛은 영원히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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