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 Mar 17. 2022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우리 집 책장에 넘쳐나는 책 중에 딱 한 권을 남겨야 한다면 나는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남겨둘 것이다. 이 책은 우울할 때 읽으면 곧바로 기분이 좋아진다. 나의 진정제이자, 수면제이면서, 엔도르핀이기도 한 책,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소개해 보겠다.      


사노 요코는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라는 작품을 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2010년 72세의 나이에 고인이 되었는데, <사는 게 뭐라고>는 노년에 쓴 에세이집이다. 사노 요코가 30대, 40대에 쓴 에세이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개인적으로 <사는 게 뭐라고>이다. 우울한 날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사노 요코 할머니가 내 옆에서 “괜찮아, 괜찮아. 사는 게 뭐라고, 조금 지나면 다 좋아질 거야.”라며 토닥토닥해 주는 기분이 든다. 스트레스에 잠을 못 이루는 날도 나는 이 책을 집어 들고 아무 곳이나 펴서 읽기 시작한다.  10분 정도 읽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금세 잠이 쏟아진다. 어느 부분에서 위로가 되는 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는 책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베스트 힐링 북이다.  사노 요코가 이 책을 썼을 때는 혼자 사는, 에 걸린 할머니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매 순간 위트가 넘치는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나는 암 환자예요.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요, 면도기로 밀어줄래요?”라고 했더니 소심한 남자 미용사는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징그러우면 안 해줘도 괜찮아요.” “아니요, 아닙니다.” 미용사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구라도 암에 걸릴 수 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민둥산이 되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이만큼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은 없었다는 것.
한국 드라마의 남자는 일본 남자라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을 태연하고 당당하게 해치운다. 장미꽃으로 하트를 그리고,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서도 이름을 부르며, 눈이 먼 여자를 위해 목숨을 끊어 자신의 각막을 이식한다.     
나도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 부모들은 강하다. 자식들은 부모가 반대하면 절대로 결혼하지 못한다. 한국 부모의 강압적이고 이기적이며 타산적인 태도는 정말로 극성맞다. 일본 아줌마들이 한 번쯤 해보고 싶어 하는 행동을 한국 아줌마들이 대신해 준다.      
일을 의뢰받으면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아, 싫다,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먹고살질 못하니까, 하는 생각으로 마감 직전 혹은 마감 넘어서까지 양심의 가책과 싸워 가며 버틴다.      


모모 언니는 집으로 돌아갈 때 “요쿄, 너 자식 참 잘 키웠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역시 모모 언니는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으니 낙천적이라서 좋겠다. 자식이 10년이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현실을 모르는구나,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기분이 들었다.      


사노 요코는 어렸을 때 전쟁을 겪으며 굶주림과 질병으로 형제들을 잃고, 이혼을 두 번이나 하고, 혼자서 아들을 키워냈고, 암에 걸린 채 홀로 노년을 맞이했는데, 어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이런 첩첩산중 막막한 상황인데 사노 요코의 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명랑함은 놀랍기만 하다. 나였으면 매일 우느라 글을 쓸 생각조차도 못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에세이 집에서 나오는 생각도 범상치 않지만, 그녀가 쓴 그림책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는 통찰이 있다. 삶의 고뇌를 유머로 승화시킨 사람만이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나 보다. 나도 요코 할머니처럼 죽는 날까지 유머를 잃지 않고, 바르게 걸으려고 애쓰고, 멋진 남자에 설레어하고 싶다.


도저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날,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사는 게 뭐라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담대함이 생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육아, 그 미친 사랑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