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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pr 28. 2022

다래끼와 이별하기



다래끼가 났다.

처음 몽우리가 솟아 오른 날부터 세어 보면 벌써 3주가 지났다. 잊을만하면 다래끼가 한 번씩 나는데, 오른쪽 눈에 다래끼가 난 것은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네 번이나 오른쪽 눈에 칼을 대고 고름을 짜냈다. 그러니까 이번 다래끼 수술(이라고까지 하긴 그렇지만, 너무 아파서 수술이라고 하고 싶다)이 다섯번 째이다. 




처음부터 3주 동안 미련하게 다래끼를 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오른쪽 눈에 뭉근하고 뜨끈한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 바로 병원에 갔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순간 다래끼는 몸집을 부풀려 약으로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래끼를 인식한 순간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약으로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래끼 난 부분에 칼을 대서 고름을 빼내야 한다. 마취를 한다 해도 그 고통은 끔찍하다. 몇 번이나 겪어봤지만, 할 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아이를 낳는 것만큼 아프다.


병원에 가자, 의사는 다래끼가 많이 진행되었다며 짜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내 머리를 잡게 하고 앉은자리에서 면봉을 들더니 손으로 다래끼 부분을 꾹꾹 누르는 게 아닌가. 가만있어도 아픈 다래끼를 손으로 힘껏 누르자 고통이 뇌를 찌르는 듯했다. 몇 번이나 다래끼 처치를 받아봤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다래끼를 짜내는 의사는 처음이었다. 나는 너무 아파 그만하자고 했다.

 “아직 덜 나왔어요. 약 드셔 보시고 안 가라앉으면 다시 오세요.”

그렇게 눌러대고도 덜 나왔다며 가라앉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의사의 뒤통수를 치고 싶었다. 나는 눈을 부여잡고 나와 약을 받아 3일을 먹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잘 맞다. 3일이나 약을 꼬박꼬박 먹었지만, 다래끼는 가라앉지 않고 내 오른쪽 눈두덩이에서 계속 몸집을 키웠다. 동그란 콩이 눈두덩이에 박힌 듯 눈알을 눌러 시야도 흐릿해졌다. 그래도 나는 병원 가는 것이 두려워 시력이 안 좋아지는 것도 버텼다. 병원에 빨리 가라는 가족들의 독촉에도 나는 3주를 다래끼를 달고 민간요법에 매달렸다. 뜨거운 달걀을 눈에 문지르고, 반신욕을 하고, 스팀타월을 눈에 갖다 대기도 하면서 열심히 다래끼를 달래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서 다래끼를 짜내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 몸부림을 쳤다.


다래끼는 보란 듯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내 눈자위를 꾹 눌렀다. 다래끼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눈을 꾹 누른 다래끼 덕분에 3주간 책도 거의 읽지 못했고, 술도 마시지 못했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결심한 나는 결국 다래끼 수술을 잘하는 병원을 폭풍 검색했다. 집에서 버스로 30분이나 떨어진 곳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매우 친절하게 다래끼를 처리해 주셨다는 댓글을 믿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병원은 나처럼 의사에 대한 믿음을 가진 환자들로 그득했다. 간호사는 나를 보자마자 ‘다래끼 때문에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곧 내 이름을 불렀고,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너무 크네요.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계셨어요. 고름을 짜내야 하는데 엄청 아플 거예요.”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죽을병을 선고받은 환자처럼 사색이 되었다. 곧 침상에 누운 나는 마음속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주문을 외웠다. 10분 후면 모든 게 끝난다며, 조금만 참자고 나를 다독였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죽을 만큼 아플 거예요. 그래도 참아야 해요.”라며 확인 사살을 했다. 나는 몇 번의 경험으로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빨리하기나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살살해 주세요.”라고 거의 울먹이며 말했다.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마취 바늘이 눈꺼풀을 찔렀고, 둔감해진 눈 위로 서걱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의사 선생님의 빠른 손놀림이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은 처치를 하면서 "정말 잘 참고 있어요. 다 끝나가요. 너무 오래돼서 고름이 엉켜있네요. " 하며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간단한 상황 설명이었지만 큰 힘이 됐다. 곧 다래끼 처치는 끝났고, 간호사는 붕대를 눈에 눌러주며 의자에 앉아 지혈하라고 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긴장감과 눈의 고통으로 한기가 느껴졌다. 살짝 뗀 붕대에 피가 흥건했다. 다시 새 붕대를 받아 눈에 대고 병원을 나와 약국에서 두툼한 약봉지를 받았다. 집에 가야하는데 버스를 탈 엄두가 안 났다. 돈이 아까웠지만,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에서 눈을 붕대로 누르고 있는 나를 기사가 흘끗거리며 봤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는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집에 올 때까지 아무 말도 걸지 않아 고마웠다.


겨우 다래끼 처치를 하고 온 것인데, 전신이 쑤시는 듯했다. 소파에 털썩 누운 나는, 이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눈은 여전히 아팠고 다래끼 수술을 한 눈은 권투 선수에게 한 방 맞기라도 한 듯 퉁퉁 부어 있었다. 다래끼 처치라는 나름 중대한 수술을 마친 나에게는 환자식이 필요했다. 죽을 끓여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죽집 사장님의 도움을 받았다.


어플을 열어 단호박죽을 시켰다. 따뜻하고 달콤한 단호박죽이 목으로 넘어가자 드디어 찌릿한 행복감이 마음을 채웠다. 비록 눈은 팅팅 붓고 멍들어 있었지만, 단호박 죽이 주는 달콤한 위로에 웃음이 나왔다.  3주 동안이나 다래끼를 달고 있으면서 다래끼가 쇳덩이라도 된 듯 내 마음을 짓눌렀는데, 해방됐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혹을 떼 낸 혹부리 영감도 이보다 홀가분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뭐든 더 가져야 행복할 줄 알았는데, 다래끼 하나 떼어냈는데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다. 다래끼가 없어져서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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