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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y 12. 2022

드디어 찾아온 손님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고 만 2년이 넘어 드디어 우리 집에도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고 말았다. 이 손님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한 번은 꼭 치러야 할 손님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막상 닥치자 생각보다 까다로운 손님의 성향에 나도 우리 가족도 모두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다.


딸부터 시작이었다. 시험을 끝내고 친구들과 놀다 온 딸은 다른 날보다 유독 지쳐 보였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싶었는데, 다음 날부터 고열에 인후통을 호소했다. 자가진단 키트 결과 두 줄, 병원에서 신속하게 처방을 받고 약을 먹었더니 이틀 만에 증상이 호전됐다. 일주일이라는 격리 기간이 무색하게 너무 빨리 쌩쌩해진 딸을 보며 ‘코로나 별거 아니구나.’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한 이틀 아프면 되는 감기에 이렇게 온 국민이 2년 넘게 절절맸단 말인가 싶어 숨죽여 보냈던 그간의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만만하게 취급한 코로나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다음날부터 나는 오한, 근육통과 함께 극심한 인후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코로나일까?’ 하고 헷갈릴 틈도 주지 않고 너무나 선명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면도칼로 목을 긁는 것 같다던 그 말이 딱 맞았다. 내 목의 경계를 따라 면도칼이 홈을 내놓은 것처럼 물도 한 방울 삼킬 수 없었고 죽도 넘길 수 없었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자다가도 남편을 불러 진통제를 달라고 했다. 그마저도 목이 아파 삼키기가 힘들었다. 처음 3일은  한 술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약만 겨우 먹는 수준으로 연명했다. 이대로 목이 낫지 않는다면 죽는 수 밖에 없는건가 싶을 정도로 고통이 극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신 의사 선생님 덕분에 나는 코로나 발병 8일째인 지금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삼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홍차를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새삼스레 느낀다. 코로나를 겪으며 나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과 의사 선생님의 실력, 약학 기술에 놀라움을 느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계시는 의사 선생님은 수시로 전화가 왔고, 현재 상태에 따라 약의 용량을 적절히 바꿔 주셨다. 대면 진료를 통해서 주사도 맞고, 목 처치도 받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을 넘긴 시간까지도 환자가 이어졌는데도 싫은 내색 없이 환자 치료에 열심인 의사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프로 페셔널의 위엄을 느꼈다.


이런 병을 지금처럼 의학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 겪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오싹해 온다. 전염병의 역사는 계속 반복돼 왔다. <조선왕조실록>에만 역병에 관한 기록이 2000여 건 이상 나타난다. 콜레라, 괴질, 천연두, 홍역 등 그 당시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다 수시로 닥쳐오는 기근과 전쟁으로 조선시대 백성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땅에 지금 태어나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금이 아니라 조선에 태어났더라면, 대한민국이 아니라 한참 전쟁 중인 다른 어느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나는 지금 컴퓨터 앞에 앉을 생각도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 대책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의료 선진국이고, 국민 개개인의 역량은 세계 최고가 분명하다. 힘들면 힘들수록 더 잘 뭉치고,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나라를 지켜낸 긍지의 민족이다. 처음 코로나 정책으로 5인 이하, 2인 이하, 10시까지 영업, 9시까지 영업 등 숫자로 봉쇄정책을 할 때는 너무 짜증이 났다. 봉쇄할수록 더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에 정책에 대한 불신이 솟구쳤다. 모든 걸 해제하고 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더 빨리 풀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정치인들보다 현명하고 강했기 때문에 코로나에 있어서도 현명하게 대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경쟁해서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눈을 치켜뜨며 살고 있지만 이 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한 여정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오늘도 전진의 역사를 한페이지 쓴다.


이렇게 살아서 5월의 햇살을 느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만으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뒤늦게 찾아온 손님이 가르쳐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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