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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y 22. 2022

결국은 스타벅스인가?

노트북을 펴도 눈치 주지 않는 동네 카페를 찾습니다


 

우리 동네는 카페가 참 많다.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다. 10분만 걸어 다녀도 카페 열 개는 족히 만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카페 동네에서도 혼자서 글쓰기 좋은 카페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커피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는 A카페가 집 앞에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5000원이니, 동네 카페치고는 비싸다. 그래도 커피가 내 입에 너무 맛있고, 커피 한 잔을 무료로 리필해 주는 곳이라 나는 그곳을 자주 찾았다. 가게 주인은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혼자 앉아 생맥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리필해 가며 노트북을 두드릴 때면 혼자라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카페가 나를 배신했다. 배신이라고 할 만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어느 날 등장한 카페 벽에 떡 붙어 있는 주의 사항 때문이었다. 흰색 플라스틱 판에 인쇄된 주의사항은 어두운 조명의 앤틱 인테리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더욱 눈에 띄었다.


 “이 커피숍은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곳입니다. 공부를 하거나 노트북을 이용하실 분은 스터디 카페를 이용해 주세요.”

 

 나는 주의 사항을 보자마자 카페 주인이 나에게 왜 웃지 않았는지, 리필까지 해 먹는 내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지 짐작이 갔다. 흰색 플라스틱에 적힌 날 선 문구들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아서 주인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즉시 짐을 싸서 나왔고, 다시는 그 카페에 가지 않았다. A카페 테이블은 언제나 여유가 있어서 노트북을 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가 얼마나 눈치가 없는 사람인지 한심했다.  


 친절하기로 소문난 B카페에 갔다. 맘 카페 활동도 열심히 하는 카페 사장님이었다. 카페 사장님의 홍보글이 올라오면 언니, 동생 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주르륵 달리며 B카페의 맛과 친절을 찬양했다. 나는 B카페에 가 보기로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사장님은 화사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식물, 북카페를 연상시킬 만큼 많은 책이 꽂혀 있는 카페 내부를 보니 책을 읽거나 글을 써도 사장님이 싫어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주문을 하고, 슬쩍 눈치를 보며 노트북을 폈다. 카페 사장님은 직접 커피를 내 자리로 가져다주셨다. 셀프에 익숙한 나는 커피를 가져다주는 사장님의 호의가 고마웠다.

      

 괜찮은 카페를 찾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글을 쓰려고 시작한 순간, 사장님은 테이블의 손님이 앉은자리에 합석을 했다. 지인들이 놀러 온 것인지 작은 카페에서 셋의 대화는 음악보다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어느 순간 나는 글쓰기보다 그들의 대화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식 이야기, 남편 이야기에 이어 손님 이야기까지, 주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었다. 이야기가 흥미로워 점점 더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여러 손님들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이 카페를 나가는 순간 저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손님 앞에서 손님 이야기를 하는 카페에 오래 있다가는 또 미운털이 박힐 것 같았다. 나는 노트북을 슬며시 덮고, 커피를 마시자마자 가방을 싸서 나왔다. 친절했지만, 또 가고 싶지는 않았다.      


 C카페는 동네 카페치고 꽤 넓었다. 2층에 통창으로 둘러싸여 있는 카페는 벚꽃이 피는 계절에 동네에서 벚꽃 명소로 통한다. 카페 밖 벚꽃 가로수가 2층인 C카페를 감싸듯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통창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을 보면서 글을 쓰면 더 잘 써질 것 같은 생각에 C 카페를 찾았다.      


 혼자 노트북을 펴고 앉아도 눈치가 보이지 않을 만한 자리를 찾았다. 중앙에 놓인 대형 테이블도, 2층 창가에 놓인 레이스 식탁보가 깔린 자리도 내가 앉을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앉을자리는, 통창을 등진 곳에, 흰색 벽을 코앞에 마주 보는 자리였다. 초등학생들이 책을 펴고 앉으면 딱 맞을 듯한 사이즈의 높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친절하게도 바로 앞에 콘센트도 있었지만, 모두 창밖을 보고 있는 커피숍에서 나 혼자 벽을 보며 노트북을 보고 있으니 벌 받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뭐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불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차를 후다닥 마시고 일어섰다.    

  

 이후에도 계속 혼자 글쓰기 좋은 카페를 물색했다. 중고등학생이 유달리 많은 저렴한 D카페는 주변에 난무하는 아이들의 욕설이 거슬려 집중할 수 없었다. 음악이 슬픈 발라드만 나오는 E카페는 모두 내가 좋아했던 곡이라 마음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느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인테리어는 예쁘지만 불편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F카페도 불합격이었다.


 1분 걸을 때마다 하나씩 카페가 나오는 동네에 내가 원하는 곳이 없을 리 없다. 다만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겠지. 동네에 카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곧 망할 것처럼 손님이 없는 카페가 다. 그런 와중에도 스타벅스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무관심하면서도 적당한 직원들의 친절, 누가 뭘 하든 신경 쓸 수 없을 정도의 넓은 공간, 노래는 언제나 팝이나 연주곡이며 커피맛도 훌륭하다.     

 

 내가 대여섯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다는 것도 아니고, 두 시간, 길면 세 시간인데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나 싶어 억울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동네 카페 사장님의 고민은 나보다 훨씬 깊을 것이란 것도 잘 안다.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퇴치하면서 자리 회전도 잘되는 수익이 잘 나는 카페를 꿈꿀 것이다. 나도 스타벅스가 아닌 동네 카페의 수익에 일조하고 싶은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카페 사장님의 적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내가 원하는 카페는, 

주인이 무심했으면 좋겠다. 무심은 불친절이 아니라 친절보다 한수 위의 관심이다. 내가 자주 가도 아는 척하지 않으면서. 싹싹함은 있었으면 좋겠다. 두세 시간 앉아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창가 자리에, 콘센트가 있으면 좋겠다. 음악은 가사가 없는 연주곡이나 팝송이면 좋겠다. 커피값은 좀 비싸도 맛있으면 좋겠다. 물론 싸고 맛있으면 더 좋다.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트북을 펴기에 편한 의자와 테이블이면 좋겠다.


별로 어려운 조건이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동네 카페를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세상에 없는 동네 카페를 찾고 있는 것인지, 나의 동네 카페 탐색은 계속될 것이다. 내 발걸음이 결국 스타벅스로 가기 전에 어서 마음에 드는 동네 카페를 찾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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