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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y 31. 2022

'예술적 재능'이란 무엇일까?

 

  


피아노 전공으로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딸은 고민이 많다. 가고 싶은 예고는 너무 벽이 높은 것 같고, 갈 수 있겠다 싶은 예고는 마음에 안 차는 상황이었다.

 “세상에는 재능충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딸은 점점 재능의 벽에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예술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을 하고, 거기에 천운이 받쳐줘야 부와 명예를 얻게 되는 분야다. 딸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유튜브를 열어보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 많은지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니 모를 수가 없다.

      

재능이란 무엇일까? 딸에게 예술적 재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일까?  
     

나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릴 때는 딸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 확신했다. 딸에게 처음으로 재능이 있다고 느꼈던 때는 네 살 때이다. 내가 동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엄마, 틀렸어. 다시 해 봐.”
 음치인 나는 뜨끔해서 다시 불렀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하며 계속 내가 틀린 음을 지적했다. 틀리고 싶어서 틀린 게 아닌데, 딸은 내가 계속 틀렸다며 짜증을 냈다.

 나는 실로폰의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가르쳐 주고 딸이 듣고 알아맞힐 수 있는지 시험해 봤다. 네 살 딸은 내가 치는 음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알아들었다. 나는 아무리 들어도 ‘미’인지 ‘솔’인지 모르겠는데, 딸은 너무 쉽게 맞췄다. 딸은 절대음감을 갖고 있었다. 엄마는 음치인데, 절대 음감의 아이가 나오다니 나는 아이의 재능에 흥분했다. (대부분 악기를 하는 예고생들이 절대음감의 소유자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주위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예체능 뒷바라지는 집안 기둥뿌리 뽑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뽑을 기둥뿌리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생존의 위협처럼 느껴졌다. 어설픈 재능이 아이와 부모의 인생에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릴 때 음악의 길을 찾아줄 마음을 접었다.


딸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친구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 가겠다며 두 달을 꼬박 조르는 딸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 가는 걸 좋아했다. 가르쳐 주는 대로 쭉쭉 흡수했고, 학원에 다닌 지 넉 달만에 체르니로 넘어갔다.


딸은 매년 방학마다 콩쿨에 참가했다. 딸은 무대에 서는 것도 좋아했다.

 “콩쿨은 너무 떨리는데 재미있어.”

떨리면서도 재미있는 것, 그런 것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그 분야에 재능과 흥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콩쿨에서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다. 콩쿨에 가 보니 세상에,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딸이 콩쿨에 나갈 때마다 나도 대회를 참관하면서 뛰어난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들은 같은 피아노에서 다른 소리를 뽑아냈다. 막귀의 엄마 귀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소리는 다르게 들렸다. 딸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딸은 초등 6년 동안 꾸준히 피아노 콩쿨에 참가했지만, 1등을 한 번도 못했다. 언제나 2등, 3등 언저리를 맴돌았다. 딸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은 1등을 하고야 말겠어.’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딸은 한 번도 포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없다. 딸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재능이 있었다.

      

딸은 쇼팽과 베토벤 등 클래식을 들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마트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도 귀를 쫑긋 세웠다. 서점에 가서는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 책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먼저 보이고, 들리는 것에 재능이 있을 가능성은 많다.

     

딸은 피아노 앞에서는 늘 작아진다고 한다. 세상에 피아노 잘 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행복하면서도 슬프단다. 피아노라는 넓고 깊은 세계 앞에서 딸에게 교만이 끼어들 틈이 없다. 매일 작아지고 좌절하면서 그것을 너무나 사랑해서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딸에게는 기술적 감성적 표현력은 부족하지만, 매일 피아노를 더 사랑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다.

     

딸의 가장 큰 악조건은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하기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하며. 피아노에 돈이 많이 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를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딸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 언제나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도 될까 말까 한 음악을 혼자의 힘으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 이렇게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데 재능이 없다니, 말도 안 된다. 이게 재능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딸에게는 누구보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이 있다.

있는 재능조차 묻어 버리고 싶은 부모의 무능과 욕심 때문에 딸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등이 아니어도, 최고가 아니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나는 너무 멀고 높은 곳만을 보며 아이에게 부담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알아주는 사람 없는 이 브런치에 글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면서 자식에게는 왜 그리 큰 욕심을 부리는지, 글을 쓰고 나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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