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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Jun 03. 2022

'맘 카페' 가입 2년 차의 후기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지역 맘 카페에 가입했다. 이제 맘 카페 가입 2년이 지났다. 맘으로 산 지 15년이나 되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맘 카페에 가입한 적이 없었다.

너무 생소한 지역에서 살게 되니 지역 소식을 알만한 데가 맘 카페밖에 없어서 가입하게 되었다.  대면으로 만나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세상에 살다가, 코로나와 함께 이사를 하게 되니 비대면 온라인 세상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맘 카페 눈팅은 생각보다 재미난 일이었다. 이곳은 어떤 소설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맘’ 카페라고는 하지만, 가끔은 남자도 글을 올리고, 아직 ‘맘’이 아닌 아이가 없는 사람도 사연을 올린다.

남자는 ‘우리 아내가 이런 행동을 했어요. 이거 정상인가요?’ 하며 여자들의 입장을 듣는 창구로 이용하기도 한다. 아이가 없는 주부의, '아이를 낳을까요, 말까요?' 하는 질문도 단골로 등장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익명이라는 우산을 쓰고 거리낌 없이 하는 곳이 맘 카페이다.


맘 카페는, 가게 주인이 이상하다, 아이 친구 엄마가 이상하다, 학교 선생님이 이상하다, 시부모가 이상하다, 남편이 이상하다, 오늘 길 가다가 만난 사람이 이상하다, 어떤 정치인이 이상하다 등등 누가 누가 더 이상한 사람을 만났나 대회도 자주 열린다.

글을 쓴 사람은 모두 상식과 교양으로 점철된 사람이며 남의 불행을 자신의 아픔처럼 슬퍼할 줄 아는 공감력 갑인 사람들이다. 내가 만난 사람은 이상하지만, 나는 절대로 이상하지 않음을 글 곳곳에서 강조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며 억울함을 말해도 내가 보기엔 글쓴이가 더 이상해 보이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정육점에서 고기를 샀는데, 구워 먹었더니 이가 아플 정도로 질겨서 화가 났다. 그래서 남은 고기를 싸들고 가서 다른 고기로 바꿔 달라고 했는데 정육점 주인이 안된다고 해서 너무 화가 난다는 이야기다.

가격이 싸서 샀는데, 먹지도 못할 고기를 팔았다며 자신이 느낀 분노를 맘 카페에 여과 없이 드러낸 글을 보며, 나는 정육점 주인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했다. 먹던 고기를 싸들고 와서 좋은 생고기로 바꿔 달라는 사람의 생떼까지 상대해야 할 정육점 주인이 안쓰러웠다.

사연도 놀라운데 거기에 달린 댓글은 더욱 놀라웠다.  공감력 갑인 맘 카페의 회원님들 답게 글쓴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정육점 주인의 태도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렸다.

나는 '정육점 주인이 불쌍하네요.'라고 댓글을 달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맘 카페 기본 공식은 글쓴이의 성토에 '공감'을 우선적으로 해 주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이다.


붕어빵이 다섯 개 2000원이었는데, 예고도 없이 2000원에 4개를 받아서 기분이 상했다는 글도 기억에 남는다. 세상 물가가 다 오르는데 붕어빵은 영원히 가격이 올라서는 안 되는 품목인가? 붕어빵 하나 가격으로 따지면 100원이 오른 것인데, 이게 맘 카페에 글을 쓸 만큼이나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댓글을 읽어보면 대단한 일인가 싶다.

댓글은 안내나 친절한 멘트 없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붕어빵 장수를 비난하고 글쓴이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붕어빵 가격이 비싸서 집에서 구워 먹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녀의 부지런함과 정성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붕어빵 틀, 밀가루, 가스 불, 굽는 시간과 노력은 돈으로 계산해 본 것인지 궁금하다. '직접 구워 먹어 보면 붕어빵 네 개 2000원이 얼마나 싼 가격인지 알게 될 거예요.'라고 댓글을 달고 싶었다. 하지만, 맘 카페는 나와 다른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곳이 아니라 우선 공감, 나와 다른 의견은 패스가 불문율이다.

 

맘 카페 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게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맘 카페에 좋다고 소문난 가게는 미어터지도록 손님을 받을 수 있다.

개업한 가게가 곧 문 닫을 것인지, 영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일주일만 지나면 알 수 있다. 호기심 많은 맘 카페 회원들은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다녀와서 후기를 남긴다. 맛이 있다 없다, 가격이 비싸다 적당하다, 사장님이 친절하다 불친절하다, 위생적이다 비위생적이다 등등 예리한 품평회가 뜨겁게 열린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되면 그 가게는 문을 열자마자 파리가 날리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걸 알기에 댓글을 읽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나도 긴장하며 맘 카페 글을 보는데, 가게 사장님들은 맘 카페 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할지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맘 카페 파워를 이용할 줄 아는 수완 좋은 사장님들은 맘 카페에 댓글을 관리하는 직원을 두고 좋은 여론을 형성하는데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손님인 척 가게와 사장님을 찬양하는 글은 조작글일 수도 있으니 일단 의심해 본다. 의심하면서도 맘 카페에서 좋다고 떠드는 가게를 우선적으로 가 보게 되는데, 몰랐던 좋은 곳을 알기도 하고, 거한 칭찬에 비해 실망하기도 한다.


맘 카페가 필요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맘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고 잘 판단하고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춘다면 큰 도움은 안될지라도 소소한 도움은 된다. 대단한 정보는 나만 알고 싶지, 모르는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는 세상사 기본원리를 기억한다면 맘 카페를 맹신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맘 카페에서 '이런 사람도, 이런 곳도,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며 요지경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는 누리되, 자주 들락날락하며 과몰입할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 맘 카페 가입 2년 차의 짤막한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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