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 Jul 21. 2022

'나는 솔로' 출연자에게 욕하면 안 되는 이유



다시 매미가 뜨겁게 우는 계절이 찾아왔다. 나무가 많은 동네에서 매미의 요란한 울음은 한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진녹색으로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맹렬한 매미의 울음소리가 여름의 온도라면 이번 여름은 40도를 넘길 것도 같다.  하루 종일 울어대는 매미의 목청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매미소리는 내리쬐는 태양만큼이나 쨍쨍하다.


한겨울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앙상한 나무밖에 없었기 때문에 동네에 나무가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 당연히 그때는 매미가 이 정도로 울어댈 것은 예상 못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나무에 새싹이 돋고, 새가 지저귀고, 벚꽃이 온 동네를 덮는가 싶더니 철쭉이 피고, 철쭉이 지고 나니 장미꽃이 동네를 수놓았다. 나무가 많은 동네는 심심할 겨를이 없다.


지금은 녹색으로 울창해진 나무에 붙어 세상에 포한진 듯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텔레비전 소리가 안 들릴 정도다. 이쯤 되면 매미가 싫어질 만도 한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 여름이 끝날 무렵 생을 마친 매미가 아파트 바닥 곳곳에 뻗어 있는 것을 보면 묻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매미에게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건 매미의 일생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매미는 7년을 땅속에서 살다가 2주간 바깥 생활을 하고 생을 마감한다. 죄 많은 사람이 매미로 환생해 벌을 받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미의 일생은 가혹하다. 살아있는 2주 동안 나무에 붙어 울기만 할 뿐 집을 짓거나, 농작물을 먹거나, 사람을 물지도 않는다. 그저 울뿐이다. 우는 매미는 수컷이고 그나마 암컷은 울지도 못한다. 죄지은 사람의 환생이라면 암컷이 수컷보다 더 큰 죄를 지은 것이 틀림없다.     


2주 동안 목청껏 우는 수컷 매미의 목적은 자신의 종족을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이다. 암컷은 수컷과 짝짓기를 한 후 나무에 알을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땅속으로 들어가 7년 동안 네 번의 탈피를 하고 나서야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지금 들리는 매미 소리를 시끄럽다고 말할 수가 없다. 차 소리, 사람 소리에 묻히지 않고 암컷을 부르기 위해 발악하듯 우는 매미에게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매미의 절박한 울음을 연상시키는 텔레비전 프로가 있다.  ‘나는 솔로’. 나는 이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한다. 결혼 17년 차의 주부에게 해당 사항 없는 연애 짝짓기 프로이지만, 나는 매주 이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한다.


 ‘나는 솔로’에서 남녀의 매력 어필과 밀당은 한여름 매미의 울음을 연상시킨다. 매미는 2주간 울지만, 이 프로는 4박 5일이라는 매미가 우는 기간의 반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매력적인 이성에게 자신의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일상을 벗어나 오직 짝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5일의 시간 동안 출연자들은 자신의 마음 바닥 저 밑에 있는 것까지 교묘한 편집과 함께 시청자에게 모두 드러내 보이고 만다. 누가 누가 짝이 될지 보다, 누가 누가 더 망가지게 될지 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을 보는 포인트다.


도도하고 능력 있고 자신감에 차 있었던 사람도 프로그램 종반쯤 가면 인터뷰를 하다가 눈물을 쏟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자신을 알게 된 것에 대한 부끄워서 울기도 하고, 출연자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울기도 한다. 우는 것은 양반이고, 이간질하고 거짓말하고 상대의 마음을 떠보거나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다른 상대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시청률이 올라가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의견이 온라인상에서 공공연하게 떠 돈다. 시청자에게 잘못 보인 사람은 이후에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혹독한 욕을 먹는다. 텔레비전 밖 제삼자들은 언제나 냉철하다. 누가 잘난 사람인지 별로인 사람인지,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이 있는지 훤히 알지만 (안다고 믿지만), 출연자들은 상대의 마음을 잘 몰라 속을 태운다.


의사에게 줄을 서는 여자들, 빼어난 미모의 여자에게 넋이 나간 남자들, 모두가 정상이다. 더 나은 종족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본능에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마음은 가지만, 표현을 못하는 것도 시청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시청 댓글에는 출연자들을 분석하고 속물적이라 하면서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나는 솔로’의 피디는 땅속에서 7년을 보내고 2주간 세상 밖에서 짝짓기를 마쳐야 하는 매미의 생에 영감을 받은 게 아닐까. 땅속에서 어떤 삶을 보냈든 세상 밖에서 매미가 할 일은 나무에 매달려 우는 일 밖에 없다. ‘나는 솔로’ 출연자들도 세상 밖에서 어떤 일을 했든 간에 프로그램을 찍는 그곳에서는 짝을 찾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번 주는 의사 남자에게 여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내 눈에는 ‘의사가 아니라면’ 절대 줄을 설 것 같지 않은 사람이지만 ‘의사’라는 타이틀은 강력한 것이다. 경제적 능력은 보통 이상으로 깔고 가면서 내 자식의 유전자에 지적 능력까지 확보해 줄 수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여자들의 모습에 혀를 차며 과몰입하며 봤지만, 사실 나도 그곳에 있다면 약간 어벙벙해 보이는 의사 남자가 매력적으로 보였을것 같다. 시간에 쫓기는 매미가 직접 되기 전까지 아무도 욕해서는 안된다.


'나는 솔로'가 오래 방영되면 좋겠다. 출연자들에게 지나친 악담을 퍼붓는다면 출연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고, 세상에 모든 살아있는 것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종족 번식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그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용감한 청춘 남녀의 출연에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그리고 부족하고 마음에 안 드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매미 울음의 본능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맘 카페' 가입 2년 차의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