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담백하다.
맛이 심심한 두부를 간장 찍어 먹는 맛 같기도 하다. 자극적이지 않아 읽는데 부담이 없고, 읽고 나서 기분도 가볍다. 은근히 포만감이 있는 두부처럼 무라카미의 에세이도 읽고 나서 기억나는 문장이 꽤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서 그는 에세이 쓰기 원칙 세 가지를 공개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
간장에 콕 찍어 먹는, 심심하지만 영양소가 가득한 두부 같은 그의 에세이 비결은 위의 세 가지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문체와 필력은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는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브런치에 올린 내 글을 읽어 보니, 하루키가 말한 세 가지를 지키지 않은 글이 대부분이다.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 나는 남의 악담을 쓰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 순간이 너무 많다. 남을 흉보는 것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
그는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면 귀찮은 일을 만들게 된다고 했다. 무라카미는 너무 유명해서 악담의 파장이 클 것이다. 나는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 악담을 써도 파장이 없어서 자꾸 썼는데, 이제 좀 자중해야겠다. 혹시 아는가 진짜 유명해져 버리는 일이 닥칠지.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 무라카미 정도 되면 마음껏 자기 자랑을 해도 될 것 같은데 그의 글을 읽으며 자랑한다고 느낄만한 글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매일 달리기나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운다는 것은 그가 말한 일상이고 내가 느낀 부러움이지, 결코 자랑은 아니다. 자랑하지 않아도 그가 얼마나 잘 팔리는 소설가이고 훌륭한 작가인지 모두가 다 안다. 그래도 그는 자랑하지 않는다. 자랑은커녕 스스로를 한없이 깎아내린다. 교만의 흔적조차 없다.
말로 듣는 자랑보다 작가 본인의 자랑을 글로 읽는 마음은 더 불편하다. 브런치 글을 읽다가도 “그래, 너 잘났다.”하며 읽기를 멈추게 된 경우도 종종 있다. 자랑과 변명은 읽기 싫은 글을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랑하지 않는다. 내가 자랑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쓸데없는 자랑을 늘어놓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 나는 시사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이 부분은 저절로 피해지는 편이다. 무라카미는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길어지므로 시사적인 화제는 피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영향력이 워낙 큰 사람이라 정치나 사회적인 의견을 내면 뉴스에서 다뤄지고 파장을 일으킬 수 있으니 피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 눈에 띄는 생각이나 말을 하는 것을 경계하는 일본 문화 속에서 자란 무라카미 하루키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을 더욱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자신의 정치 사회적 의견을 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다양한 생각을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무라카미도 용기를 내서 자신이 가진 시사적인 생각은 좀 피력해도 좋을 것 같다. (무라카미에게 용기 운운할 입장은 아니지만ㅎ)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쓰기 세 가지 원칙, 대가의 원칙이니 만큼 따라 해 본다고 손해 날 일은 없을 것 같다. 특히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는 마음에 새길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