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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Jul 26. 2022

소중한 나의 쓰레기



         

작년부터 쓰기 시작한 동화가 내 컴퓨터에 어느덧 20편 정도 쌓였다. 다시 꺼내 읽기가 두려운 쓰레기이다. 쓰레기라면 버려야 마땅한 것인데, 내가 얼마나 내 쓰레기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이 학교에서 코딩을 배웠다며 내 컴퓨터로 해 보면 안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평소에는 내 자료가 날아갈까 봐 아들에게 내 컴퓨터 사용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뭐가 씌었는지, ‘코딩’이라는 단어가 아이의 미래를 열어줄 달콤한 단어로 들려 컴퓨터 사용을 허락해 주고 말았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배워 온 아들이 기특해서 컴퓨터를 열심히 두드리는 아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지긋이 바라보았다. 모니터에는 게임 화면과 비슷한 것이 연신 화려하게 나타났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이고, 미래에 꼭 필요하다는 ‘코딩’이라고 하니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지웠다.


아들은 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컴퓨터를 정신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이제 그만 저장하고 다음에 하라는 나의 독촉이 이어지자 겨우 노트북을 덮고 일어섰다. 뿌듯한 아들의 표정에 나도 기분이 좋은 밤이었다.      


다음 날, 나는 모두가 학교로, 회사로 떠난 시간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쓰고 있던 동화를 찾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쓰면서 너무 쓰레기 같은 글이라, 마무리하고 나서 다시 갈아엎을 심산이었다. 동화 폴더를 클릭하려고 화면을 마우스로 더듬었다.

폴더가 사라졌다!

시기별로 분류해 놓은 동화 폴더가 몽땅 사라져 버렸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크게 깜박이면 무언가 나타나기라도 할 듯 연신 눈을 떴다 감으며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어딘가 숨어있겠지 싶어 파일의 흔적을 찾았다. 흔적을 겨우 찾아 눌러도 화면에는 없는 파일이라는 문구가 떴다. 나도 모르게 아들을 향한 육두문자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들이 학교에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학교로 전화해서 아들을 불러 사태를 해결하라고 종용하고 싶었다.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내가 쓴 글이 쓰레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쓰레기가 되어 내 눈앞에 사라지니 미칠 것 같았다.


한참을 컴퓨터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몇 개의 살아있는 파일을 건졌다. 하지만, 프린트도 해 놓지 않은 가장 최근에 쓴 글 세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용은 알지만, 다시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거창한 작품도 아닌 겨우 습작 초고가 없다고 세상이 무너진 듯 절망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회사에 있는 남편한테 문자를 보냈다. 아들이 내 동화를 다 날려먹었다고.

그런데, 남편의 반응이 의외였다. 어차피 책으로 나올 것도 아닌 연습 삼아 쓴 것이니 다시 열심히 써 보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시전 할 줄 알았다. 남편은 언제나 객관적 입장에서 말해 내 분노에 더욱 기름을 붓곤 하는 사람이다. 나의 억울한 입장을 설명하면 언제나 상대의 입장에서 조목조목 반박하기를 좋아해 ‘남의 편’ 임을 증명하곤 했는데, 이번엔 반응이 내 기대와 조금 달랐다.

 “내가 다 찾아줄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아들 잡지 말고.”

나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란 걸 알지만, 일단 남편의 문자를 보자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쓰레기같은 내 글이 아들보다 중요 할리는 없기 때문에 글이 없어졌다고 아들을 잡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알았지만, 감정적으로 불쑥 치밀어 오르는 아들에 대한 분노가 문제였다.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들이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전화로 아들에게 폭격을 날렸다. 두려움에 떨며 아들은 자기 친구 중에 컴퓨터를 엄청 잘하는 친구가 있다며, 그 아이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며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너는 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맨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냐며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하교한 아들을 보면 더 폭발할 것 같아, 나는 마트를 핑계로 밖으로 나갔다.


그래, 쓰레기 같은 글이니까... 또 쓰면 되지 뭐...

장편을 쓰다가 날려 먹은 작가도 아니고, 겨우 습작일 뿐인데 오버하지 말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마트를 돌며 맥주를 한가득 사서 집에 오니 남편이 일찍 퇴근해 와 있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내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부성애의 결과였겠지만, 남편이 조금 듬직해 보였다. 쓰레기 같은 내 글을 찾기 위해 컴퓨터의 휴지통을 뒤지고, 드라이브를 뒤지는 남편이 어쩐지 낯설었다.


남편은 기필코 찾아내겠다는 집념을 보였다. 솔직히 나는 내 글이 없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한 참이었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집중한 남편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남편은 세시간여의 작업 후에 내가 쓴 글의 90프로 이상을 찾아서 복구했다. 아들은 도대체 컴퓨터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폴더에 정리된 파일을 여기저기 분산해서 곳곳에 폭탄을 터뜨려 놓았다. 대충 수습한 남편은 칭찬을 가득 기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마치 충성스러운 대형견의 순박한 표정 같았다.

 “서방님이 최고지?”

 나는 ‘옛다, 칭찬’ 하며 남편을 칭송해 주었지만, 솔직히 그렇게 구석구석 찾지 않아도 됐다. 어차피 다 쓰레기 같은 글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기필코 내 파일을 찾아서 보여 주고 싶었나 보다. 그것이 나에 대한 사랑일지, 아들에 대한 사랑일지, 자기 존재감에 대한 과시 일지 알 수 없지만, 남편은 참으로 열심히 그 일을 해냈다. 아마 그 모든 것의 합이겠지만 아들은 무사히 그날을 넘겼고, 나는 글을 찾았다.


쓰레기가 작품이 되는 날까지 아직 멀고 멀었지만, 그 난리를 떨었으니 다시 마음잡고 쓰레기 같은 글을 쌓아 보려 한다. 쓰레기가 없으면 번듯한 작품도 탄생할 리 없다.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에게 컴퓨터를 맡기지 말 것, 그리고 백업이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나의 소중한 쓰레기 더미를 오늘도 하나 더 쌓아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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