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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r 25. 2022

글쓰기에 의심이 올라오는 순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일본어 모임에 오랜만에 나갔다. 

지난 11월. 백신 패스라는 이름하에 ‘백신 미접종자 총 봉쇄령’이 떨어진 후 처음 나간 오프라인 모임이었다. 카페에 매주 모여 두 시간 동안 일본 원서를 읽고, 일본어로 수다를 떠는 이 모임은, 모이는 사람들의 합이 좋아 언제나 에너지를 받는 시간이다. 백신을 맞지 않거나, 부작용 때문에 1차만 맞고 포기한 사람, 코로나에 걸린 사람 등이 차례로 나타났지만, 꿋꿋이 오프라인 모임을 이어갔다.


우리가 지금 일본어 모임에서 읽고 있는 책은 히가시노 게이코의 베스트셀러 ‘나미야 잡화점’이다. 

한국어판으로 얼마 전에 읽으면서 흥미로운 이야기, 완벽한 가독성,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잔잔한 감동까지 베스트셀러의 조건을 모두 갖췄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에서 끝나지 않고, 작가의 능력을 감탄하고, 부러워한다. 심지어 몇 쇄까지 찍어낸 책인지 확인하며 인세가 얼마나 나올지 계산해 보고는 혼자 입을 쩍 벌리곤 한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잡생각을 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의 능력과 부를 시샘한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내가 동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어린이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을까?

 내가 쓴 동화책이 서점에서 팔리는 날이 올까?


정작 가장 열심히 해야 할 글쓰기는 하지 않으면서 나를 의심하며 자아비판에 빠진 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일본어 모임에서 읽은 ‘나미야 잡화점’의 내용은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의심과 게으름을 꾸짖는 말처럼 들렸다.


책 내용 일부를 살짝 말하자면 이렇다.

뮤지션을 꿈꾸는 청년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며 포기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얼마간 노력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아버지가 하시던 생선가게를 물려받겠다고 한다. 나이는 점점 많아지고,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 하나도 없고,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아버지가 쓰러져서 가계를 돕겠다는 이유는 꿈을 포기하는 그럴듯한 핑계가 되었다.

여기에 나미야 잡화점에서 보낸 상담 편지에 이런 말이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믿으세요.’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야말로 심쿵하는 말이어서 되뇌어 보았다.

동화를 공부하고 쓰기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이도 어중간한 것 같고,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쓴 작품은 너무 어둡고 칙칙한 것 같고,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생활의 답답함 등등의 갖가지 이유를 붙이며 글쓰기를 게을리하고 있었다. 내가 동화작가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으며, 동화 작가가 되지 못할 이유는 백가지 천가지도 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편 책에서 정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어. 끝까지 멈추지 않고 가 보렴. 너의 작품으로 희망을 얻는 사람이 나타날 거야.’


동화 작가가 되는 길을 멈추기 전에, 내가 진짜 최선을 다해 보았나?

가슴에 손을 얻고 솔직히 생각해 보면 전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이제 열 개 남짓의 작품을 썼고, 쓴 작품의 퇴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고 말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50편의 단편을 써 보자고 생각했다. 

그 단편이 모조리 공모전에 떨어지고, 모든 출판사가 나를 거부한다면 그때 포기하자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를 믿어보자고. 우연처럼 시작한 동화작가의 길이지만, 우연을 가장한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주저앉고 있던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본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그 누구도 나를 믿지 못할 거다.

오늘은 덮어두었던 작품을 꺼내 다시 고치고 매만지려고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를 믿어보자고, 나를 다독거리며 멈추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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