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눈에 닿는 모든 것이 구경거리이다. 사람도 많고, 건물도 많고, 행사도 많고, 문화재도 많다. 지방러인 나에게는 책에서, 텔레비전에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서울은 모든 곳이 포토존이 된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사진을 마구 누르는 아줌마를 본다면, 그 사람이 나다. 서울이 신기해 어쩔 줄 모르는 아줌마가서울 성공회 성당에 가보았다.
시청역 4번 출구로 나왔다. 우주선 모양 같은 서울 시청 앞에서 횡단보도 건너편을 바라보면 중세 유럽의 어느 도시에 있을 법한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건물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 '네가 왜 거기서나와?'라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특별한 건물이다. 바로 대한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이다.
미래 도시에 나올법한 오묘한 색깔과 모양을 띤 서울 시청 건물에 눈길을 둘 새도 없이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길을 건너라 재촉했다. 길을 건넜더니 과거의 어느 한 지점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붉은색 벽돌 건물의 아치형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검은 옷을 입은 서양 수도사가 나와서 인사를 할 것만 같다. 가을로 물들인 커다란 고목의 단풍과 어우러진 붉은 벽돌의 성공회 성당의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균형감이 똑 떨어지게 지은 서양적인 외형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옥 양식이 군데군데 보인다. 지붕이 기와 모양이고, 처마와 창문도 한국적이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일반 교회처럼 화려한 것이 아니라 오방색을 주로 사용해 톤이 낮고 절제미가 돋보인다. 건물만 보아도 성공회는 우리나라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토착화에 성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그 배려를 높이 살 만하다.
그렇다면 성공회란 무엇일까? 종교에 무지한 나는, 성공한 천주교 신자들의 모임인가 싶었더니, 영국 국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따르는 교회의 총칭이라고 한다. 영국 헨리 8세가 분리 독립해 만든 영국의 국교이지만 천주교와 비슷한 종교라고 한다.
나는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고, 특별히 믿지 않는 종교도 없다. 급할 때는 하나님, 부처님, 달님, 해님까지 찾지만 보통 때는 나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성공회 성당에 가니 이런 성당은 한 번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외부와 내부가 한결같이 우아하고 아름답다. 종교적 신념이 아닌 건물의 겉모습을 판단하고 성당에 다닐 일은 아니지만, 성공회 성당은 그만큼 건물 자체로 매력이 가득하다.
성공회 성당 뒤뜰에는 벽돌로 지어진 한옥(이 건물은 영국 공사관 터였으며, 지금은 성공회 사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이 있고, 그 앞에 6월 항쟁 비석이 있었다. 1987년 성공회 성당에서 6월 민주 항쟁의 진원지가 되었다고 한다. 고즈넉한 성당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의기투합을 했던 곳이라 하니 그 장소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대한민국은 1987년 민주화의 거센 파도를 지나,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냈다. 88 올림픽 때 세계의 건축가들은 성공회 성당 건물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로 뽑았다고 한다. 현대사의거친 울림을 감당한 장소치고는 여전히 성스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기품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곱고 우아한 노인을 보는 것 같았다.
성공회 성당을 나오면 바로 덕수궁 돌담길과 연결이 된다. 얼마 걷지 않아 세실극장이 나타난다. 극장의 세실 마루 전망대로 올라가니 마치 동서고금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묘한 풍경이다. 서울이 시공을 잇는 도시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앞에는 우주선 같은 시청, 왼쪽에는 크로아티아의 어느 마을인듯한 성공회 성당, 오른쪽에는 조선의 임금님이 사셨던 덕수궁 담장이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 궁궐을 둘러싼 나지막한 담장 옆으로 삐죽한 건물들이 솟아나 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바삐 걸어 다닌다. 첨단의 높은 빌딩과 오래된 유적이 함께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 모습을 남기고 싶어 나는 연신 카메라를 들이댄다. 아무리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봐도 실물의 아름다움이 다 담기지 않아 불만스럽다. 눈으로 남기고 다음에 또 오자 하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매년 봄가을 수요일 정오에 '성공회 정오 음악회'가 열린다고 하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와 보자고 마음먹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한나절의 짧은 서울여행이었지만, 시공을 초월해 멀리 다녀온 듯 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