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마로니에’라는 그룹의 ‘칵테일 사랑’이라는 곡이 대히트 했다. 그때 프랑스 말 같기도 하고, 영어 같기도 한 '마로니에'가 뭔가 싶어 찾아봤더니, 서울에 있는 공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을 알고 30년이 흘러서야 마로니에 공원에 가보게 되었다.
마로니에 공원은 그 유명세에 비해서는 공원 규모가 크지 않았다. 마로니에라는 이름을 연예인으로 알게 된 지방 사람에게 마로니에 공원은 첫 눈에는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우선 크기 부터 ‘에게, 이게 다야?’라고 할 만큼 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크기였다. 요렇게 조그만 공원이 그렇게 유명할 이유가 있나 싶어 공원을 쓱 둘러보았다. 빨간 벽돌 건물과 동상 몇 개, 의자가 군데군데 있었다.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 자리는 서울대학교 자리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제국 대학으로 시작했던 서울대 문리대 자리이다. 나는 마로니에 공원이 대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길거리 공연을 자주 하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지, 서울대학교 자리였던 것은 몰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울대를 관악구로 옮기면서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이 된 것이다. 서울대를 외진 관악산 기슭으로 옮긴 이유는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서울대의 단대를 모으기 위한 이유가 표면적이었고, 자주 시위하는 서울대생들의 진압을 쉽게 하기 위함이 진짜 이유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울대가 있었던 그 자리에 들어선 마로니에 공원. 그럼 왜 이름이 마로니에인가?
마로니에는 식물 이름이다. 경성제국대학 시절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 자리에 일본인 교수가 마로니에라고 착각한 ‘칠엽수’라는 식물을 심었다. 칠엽수와 마로니에는 닮았지만 다른 식물이다. 교수의 착각 덕분에 칠엽수 공원이 될 뻔한 것이 마로니에 공원이 되어서 다행이다. 지금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나무도 대부분 칠엽수이고, 진짜 마로니에 나무는 세 그루 정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아마 칠엽수 공원이 되었다면 마로니에라는 그룹의 ‘칵테일 사랑’이라는 명곡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칠엽수’라는 단어로는 ‘마로니에’에서 느껴지는 낭만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잎이 일곱 개여서 칠엽수라는 나무보다 ‘마로니에’라는 막연하고 모호한 이름이 사람들의 허영을 자극한다.
모호하고 애매해서 막연히 낭만적인 이름 탓일까?
마로니에 공원은 대학로의 중심이며, 젊음의 상징이기도 했다. 마로니에 공원은 8,90년대 대학 생활을 했던 과거 청춘의 상징이다. 각종 연극 무대가 펼쳐졌고, 거리에서 무명 가수들의 공연이 열렸다.
‘마로니에 빨간 벽돌 건물 앞에서 만나.’
스마트 폰이 없었던 그 시절 젊은이들은 아마 이런 약속을 하지 않았을까. 마로니에 공원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빨간 벽돌 건물,아르코 예술 극장이다. 이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작품’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매우 독창적이면서 아름다운 건물이다. 벽돌로 굴곡을 만들어 빛과 어둠의 음영을 자유자재로 조각한 것 같다. 이 건물을 보며 김수근 건축가가 탁월한 감각의 건축가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르코 예술극장 외에도 김수근 건축가는 대학로에 있는 샘터 건물, 세운상가,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 등 한국의 굵직한 건물을 작품으로 남기고 떠났다. 뛰어난 건축가이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을 고문과 취조에 완벽한 건물로 설계하면서 독재정권의 야욕에 영합한 인물이라는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붉은 벽돌 건물에서 시선을 거두고 마로니에 공원 구석구석으로 시선을 옮기면 김상옥 의사 동상, 고산 윤선도 생가터 비석, 도산 안창호 흉상, 타고르의 흉상, 시인 김광균의 시비, 몽양 여운형 서거지 비석 등 한국사 책에서 보았던 인물들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비석에 새겨진 인물의 일대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로니에 공원에 우뚝 선 김상옥 의사의 동상에는 ‘열사’라고 잘 못 표기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김상옥 의사는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며 온몸으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한 독립투사인데, 열사라는 칭호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열사’와 ‘의사’는 비슷한 의미로 쓰이지만, 무력으로 항거했느냐가 주요한 차이이다. 김상옥 의사는 폭탄이라는 무기를 사용해 목숨을 바쳐 일제에 저항했으니 ‘의사’라는 칭호가 더 맞는다는 생각이다.
대학가의 젊음을 상징하는 마로니에 공원은 평일 낮이라 그런지 생각만큼 북적이지도 열기를 느끼지도 못했다. 한적한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 숨겨진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용해서 오히려 좋았던 마로니에 공원이다. 북적거리는 마로니에 공원보다 조용한 마로니에 공원이 좋다는 것은 내 청춘도 이제 조용히 지나갔다는 뜻이겠지.
마로니에 공원의 나무들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마치 아직도 건재하다고 말하며 힘자랑을 하고 싶어하는 중년의 사나이를 보는 듯 했다. 청춘은 갔지만, 공간은 남아 한때는 뜨거웠던 그들을 기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