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하지만 티 낼 용기는 없고
마음에 맺힌 말들은 입 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데, 말하는 법을 까먹은 거 같다.
순간순간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있다. 그 상황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싶고, 의문을 풀고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준도 취향도 확고해지니 내 마음에 안 드는 일 투성이다. 흐린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다짐하지만,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는 6개월째 탁구를 배우고 있다.
선생님께서 정해진 탁구 레슨이 아직 한 번 남았는데 새로운 레슨비를 요구하셨다. 지금까지 나는 레슨 횟수를 세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수업료 내는 날이라고 말씀하시면 바로 입금을 했다.
날짜가 내 생각보다 금방 다가오는 느낌이라 지난달은 달력에 표시를 해 보았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레슨이 아직 한 번이 남은 상태였는데, 한 달 레슨이 끝났다고 말씀하신 거다.
이번이 우연일까? 계획적이신 걸까? 내가 횟수를 세지 않은 달에도 레슨을 빼먹고 수업료를 요구하신 걸까? 갑자기 머릿속이 의구심으로 복잡해졌다.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선생님은 종종 시간을 늘려 수업을 해주신다. 나는 그게 보너스 수업인 줄 알았는데, 철저하게 시간으로 계산되어 횟수로 차감된 것일까? 따로 차감한다는 말씀이 없으셨는데, 어찌 된 일일까?
한번 확인해 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왜 말을 못 할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나의 어정쩡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태도로 대하니 남들도 나를 호구 잡기 쉽다고 생각했을 것 같은 피해망상까지 몰려온다.
탁구는 재미있는 운동이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탁구채 잡는 법도 몰랐는데, 공이 딱딱 맞고 네트를 넘어가는 게 신기하다. 운동 신경이 둔한 아줌마가 이렇게 까지 된 데에는 선생님의 공로가 크다. 나는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선생님은 친절하고 자세하게 가르쳐 주신다. 나는 무척 고마워했는데, 이렇게 레슨 횟수가 달라지니 고마운 마음도 사라지려고 한다.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매우 번거롭게 느껴진다. 자식 문제, 부모 봉양, 먹고살 걱정, 내가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탁구 횟수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다. 선생님은 나에게 왜 이런 고민을 안겨주시는 건지 원망스럽다.
이렇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 그냥 멀어지는 쪽을 선택한다. 안 봐도 되는 사람과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싶지가 않다.
어쩌면 탁구를 그만둘 핑곗거리를 마음속으로 찾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탁구는 꼭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탁구장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갈등 해결에 쓰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가 않다.
"선생님, 지난달에 수업 한 번 빠졌어요. 호호."
웃으면서 그냥 말해도 되는 일일까? 선생님이 가정 형편이 어렵고(내가 더 어렵다), 탁구장 회원도 감소하는 듯 하니(왜 내가 그 손실을 메꾸어야 한단 말인가) 레슨 한 번 정도는 눈감고 넘어가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번 달까지만 하고 탁구장을 끊을 생각이다. 레슨 횟수에 대한 말은 하지 않고, 바빠서 당분간 쉬겠다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어지간하면 불만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말하고 나서 관계가 더 불편해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심한 사람의 소심한 복수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멀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