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개를 키우나 보다

입양 3주 차

by 나로



어렸을 적부터 개를 무서워했다. 소형견, 대형견 가리지 않고 모든 개가 내 눈에 맹수로 보였다. 짖기라도 하면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화면으로 보는 개는 무섭지 않은데, 실제로 보는 개는 너무 무서웠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집에 개가 있으면 놀러 가지 않았다. 아니, 놀러 가지 못했다.


그런 내가 개를 입양했다. 개보다 더 무서운 사춘기 아들 때문이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아들과 나 사이에는 풀리지 않는 감정과 문제들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고, 아들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엄마를 적대시했다.


그런 아들이 개를 원하니,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이미 개를 키우고 있는데, 무슨 개냐고 아들에게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회유와 협박을 거듭했다. 나도 굴하지 않았다. 개와 사느니 혼자 집을 나가 사는 게 낫겠다고 했다. 집에 개가 함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우리의 팽팽한 갈등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남편이 끼어들었다. 언제나 '아빠는 엄마 편'이라던 남편이 이번에는 아들의 편을 들어줬다.

"생각해 봐, 아들이 물질적으로 우리에게 뭐 사 달라고 한 적이 있어?"

정말이지 아들은 옷이나 신발은 물론이고 장난감도 사달라고 한 적이 없다. 어릴 때는 식물 화분을 사 달라고 했고, 커서는 책을 사달라는 것 밖에 없었다. 학원도 다니기 싫어해 교육비도 별로 들지 않았다. 반면 딸은 본인의 꾸밈비는 물론 교육비도 꽤나 많이 들었다.

"개랑 물건이랑 같아?"

나는 항변했다. 남편이 나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결정타를 날렸다.

"내가 사실 어렸을 때 개를 너무 키우고 싶었어. 집안 형편이 뻔히 보이니까 말조차 꺼내지 못했지. 목욕은 내가 시키고, 산책은 아들이 다 한다잖아. 키우자, 여보."

남편은 아들의 등에 기대 자신의 어린 시절 이루지 못했던 로망을 이루고자 했다.


결국, 우리는 태어난 지 2개월 된 수컷 미니비숑을 입양했다. 하얗고 복슬한, 강아지 인형의 표본 같은 모습의 개였다. 개를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보는 미소가 피어올랐고, 남편도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보았던 개 중에 제일 이쁜 개라며 행복해했다.


남편은 회사로, 아들은 학교로 가고 집에는 개와 나만 남았다. 개는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부엌으로, 방으로, 거실로 방향을 트는 내 모습을 까만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다가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쫓아다녔다. 밥을 주면 허겁지겁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개의 먹방은 은근한 힐링이 되었다. 입 짧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밥 먹이는 스트레스가 컸던 나는 잘 먹는 개의 모습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비만 걱정만 아니라면 무제한 사료를 공급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난감을 쫓아 이리저리 뒹굴다가 갑자기 내 발 옆에서 잠든다. 아기 강아지로서의 귀여움을 있는 대로 뽐내고 있는 개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개가 집에 온 지 3주, 청소년 자녀를 키우면서 바삭바삭 메말라 가던 마음이 촉촉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학교갔다 온 아이들에게, 개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환대에 가족들은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들의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던 우리 집 청소년들은 개를 보기 위해 거실에 모이고, 개의 '앉아'와 '기다려'시범에 환호한다. 집에는 오랜만에 웃음소리로 넘실거린다. 개 덕분에.

이래서 개를 키우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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