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 가장 구석진 곳에, 유령처럼 떠도는 주소 하나가 있다. 가끔 실수로 클릭이라도 할까 봐 두렵고, 그렇다고 차마 삭제하지는 못해 외면하고 있는 곳. 일 년 하고도 몇 개월 전, 내가 야심 차게 문을 열었던 첫 번째 블로그다. 지금은 디지털 폐허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올린 글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처럼 뻘쭘하게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영혼 없이 달렸던 몇 개의 광고 댓글만이 묘비처럼 남아있다.
그 블로그의 시작은 꽤나 그럴듯했다. ‘나도 이제 생산적인 활동을 좀 해봐야지.’, ‘기록하는 삶은 분명 가치가 있을 거야.’ 스스로에게 그런 명분을 잔뜩 부여했다. 서점에 가서 블로그 관련 책을 몇 권 사서 밑줄을 그었고, 성공한 블로거들의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는 끝난 것 같았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당시 유행하던 재테크, 자기계발, 전자기기 리뷰 같은 것들. 솔직히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엄청난 관심이 있는 분야도 아니었다. 하지만 소위 ‘돈이 되는 주제’라고 했다.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따르는 대신, 세상의 계산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게 더 현명한 길이라고, 더 빠른 길이라고 믿었다. 그것이 모든 실패의 시작이었다.
첫 일주일은 그럭저럭 버텼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억지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관련 서적을 억지로 읽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베끼다시피 짜깁기해서 포스팅 하나를 겨우 완성했다. 글 하나를 올리고 나면 뿌듯함이 아니라, 그저 숙제를 끝낸 아이의 안도감만이 남았다. 글쓰기는 더 이상 즐거운 창작이 아니라 고된 노동이었다.
진짜 지옥은 ‘1일 1포스팅’이라는 스스로 만든 규칙에 갇히면서부터 시작됐다. 하루라도 글을 올리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쓸 이야깃거리는 이미 바닥났지만, 뭐라도 써야 했다. 어제 읽은 신문 기사에 대한 단상, 별 의미 없는 하루의 기록, 심지어는 점심으로 먹은 김치찌개 사진까지 동원됐다. 내용은 점점 비어갔고, 블로그는 정체성을 잃고 표류했다.
숫자는 또 다른 감옥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방문자 수였다. 어제보다 숫자가 조금이라도 오르면 안심했고, 떨어지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이웃 수를 늘리기 위해 하루에 수십 개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의미 없는 댓글을 달았다. “잘 보고 가요.”, “좋은 글이네요, 소통해요.” 진심은 한 스푼도 담기지 않은 기계적인 문장들이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를 구걸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노동을 꾸역꾸역 이어가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온 늦은 밤, 여느 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얀 모니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키보드 위에 얹은 손가락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아니, 쓰고 싶지 않았다. ‘이거 해봤자 돈이 되나? 돈이 안 된다면 나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1일 1포스팅’을 어겼다. 왠지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지만, 다음 날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다. 내 블로그의 방문자 수가 몇 명 줄어든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허무했다. 그렇게 하루를 쉬고, 이틀을 쉬었다. 죄책감은 점점 무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블로그의 비밀번호조차 잊어버렸다. 나의 첫 번째 블로그는 그렇게, 요란한 선언도 없이 조용히 죽었다.
실패의 원인을 합리화하는데 애썼다. ‘요즘 블로그는 끝물이야.’, ‘나는 마케팅에 재능이 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진짜 이유가 보였다. 문제는 플랫폼도, 재능도 아니었다. 그곳엔 ‘나’의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 밤을 새워도 즐거운 이야기가 부재한 공간은 사상누각일 뿐이었다. 나는 그저 모래 위에 성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난 안돼.’
그렇게 스스로에게 실패의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는 글 같은 건 쓰지 않겠다고, 어설픈 꿈은 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그때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