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블로그, ‘쉬운책방’의 시작은 완벽에 가까웠다. 적어도 처음 한 달간은 그랬다. 나는 1년 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절대 숫자를 보지 않기로 맹세했다. 방문자 수, 이웃 수, 공감 수… 나를 옭아맸던 모든 숫자를 의식적으로 외면했다. 오직 내가 밑줄 그은 문장, 책을 읽다 떠오른 생각의 파편들을 기록하는 즐거움에만 집중했다.
퇴근 후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시간은 더 이상 노동이 아니었다.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놀이 시간이 되었다. 어떤 문장을 소개할까, 이 문장에 얽힌 내 경험은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만했다. 포스팅 하나를 완성하고 ‘발행’ 버튼을 누를 때면, 세상을 향해 나만의 작은 종이배를 띄워 보내는 기분이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어디로 흘러가든 상관없었다. 그저 내가 만든 종이배가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에 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 편씩, 꾸준히 글을 쌓아갔다. 옛날에 읽었던 자기계발, 에세이, 소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탄을 기록했다. 때로는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퓨쳐 셀프>의 한 구절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기도 했다. 모든 글은 온전히 나로부터 시작된, 내가 진심으로 좋아서 쓰는 글들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독자를 향한 행위다. 아무리 나 자신을 위해 쓴다고 되뇌어도, 내 글이 세상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결국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블로그 통계 페이지를 클릭했다.
숫자는 정직했고, 그래서 더 비참했다. ‘일간 조회수: 3’. 그나마도 두 번은 내가 글을 수정하느라 들어간 기록일 것이다. 다른 날은 ‘1’, 심지어 ‘0’이 찍힌 날도 수두룩했다. 온 마음을 다해 띄워 보낸 내 종이배들은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표류하다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 원래 시작은 다 이런 거야.’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한번 열린 판도라의 상자는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다음 날부터 나는 다시 숫자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으로 통계를 확인했고, 자기 전까지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조회수가 ‘5’라도 되면 오늘은 누가 내 글을 읽어주었을까 설렜고, ‘0’인 날에는 온종일 기분이 바닥을 쳤다. 재미를 위해 시작했던 블로그는 다시 나를 평가하는 냉혹한 성적표가 되어버렸다.
정확히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던 날이었다. 블로그로 애드포스트를 설정하면 작은 수입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청 방법도 무척 간단했다. 그냥 애드포스트 신청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거였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루 방문자가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유령 블로그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었다. ‘혹시 알아? 기적이 일어날지.’, ‘이게 통과되면 다시 글 쓸 힘이 날지도 몰라.’ 하는 어리석은 희망이 고개를 들었다.
며칠 간의 망설임 끝에, 나는 결국 신청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어차피 떨어질 게 뻔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것은 글쓰기 자체의 즐거움이 바닥나기 시작하자, 어떻게든 외부에서 새로운 동력을 끌어오고 싶었던 나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결과는 일주일 뒤, 정확하게 메일로 도착했다. 제목은 단 두 단어. [등록 보류]였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애써 담담하게 메일을 열었다. 내용은 길었지만, 핵심은 명확했다. 방문자 및 페이지뷰 부족, 콘텐츠의 양과 질 미흡. 한마디로 기준 미달이라는 뜻이었다.
순간, 1년 전 첫 번째 블로그를 포기하던 그날의 감정이 온몸을 덮쳐왔다. 그때와 똑같았다. 나의 노력, 나의 시간, 나의 진심이 세상으로부터 공식적으로 거절당한 느낌. ‘재미’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나는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
‘방문자수도 저조한 곳에 수익승인이 되어봤자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미만 있으면 된다고? 그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너만의 정신 승리일 뿐이라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것 자체가 고문처럼 느껴졌다. 하얀 화면 위에 깜빡이는 커서가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아 불안했고,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내 안의 모든 이야기가 전부 증발해버린 기분이었다.
포기라는 단어가 유령처럼 집 안을 맴돌았다. 그만두는 건 너무나 쉬웠다. 그냥 지금처럼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더 이상 상처받을 일도, 실망할 일도 없을 것이다. 1년 전처럼, 그렇게 조용히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포기는 언제나 그렇게 달콤하고 편안한 얼굴로 다가온다. 나는 그 유혹 앞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