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가 아닌, 나를 위해 서평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by 달글이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접속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희미했다. 애드포스트 탈락 메일을 받은 뒤로, 나는 노트북을 열지 않았다. 하얀 화면 위에서 무심하게 깜빡이던 커서는 이제 보고 싶지 않은 상처의 기억일 뿐이었다. 방 한구석에 놓인 노트북은 마치 폐허가 된 나의 꿈처럼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포기는 이토록 간단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글을 쓰지 않으니 숫자 때문에 괴로워할 일도 없었고, 세상의 냉담한 반응에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퇴근 후의 저녁은 고요했고, 주말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화는 어딘가 기묘했다. 텅 빈 공허함 위를 불안하게 떠다니는, 가짜 평화였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글을 쓸 힘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것마저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위였다.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내면이 소란스러워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언제나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블로그 성공 노하우나 글쓰기 비법서 대신, 그냥 마음이 가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법정 스님의 에세이를 읽었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기록을 펼쳤다. 때로는 오래된 고전을 다시 꺼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자기 치유 과정이었다. 나는 책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타인의 문장 속에 나의 지친 마음을 잠시 담가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친구가 툭, 하고 내뱉은 말이 마음에 들어와 박혔다.


“결과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자, 과정의 모든 순간이 선물이 되었다.”


그 말은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강력하게 나를 흔들었다. 나는 ‘애드포스트 합격’이라는 결과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그 달콤한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과정의 즐거움마저 송두리째 부정당했던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재미’라는 연료가 아니라, 결과를 향한 ‘기대’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용기였다.


그 깨달음은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다른 책에서는 또 다른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만의 보폭을 존중하세요.’,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믿으세요.’ 책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문제는 너의 글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너의 ‘좁은 세계관’이라고. 조회수와 광고 수익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세상과 나를 재단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단지 문장 하나 소개하는 것으로 그쳤던 나의 경솔함이, 책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나의 얄팍함이 부끄러웠다. 독자들이 내 글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엔 나의 진솔한 고민과 성찰이 빠져 있었으니까.


‘다시 써보고 싶다.’


아주 오랜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었다. 단순히 문장을 소개하고 내 짧은 감상을 덧붙이는 것을 넘어, 책 한 권이 나의 삶을 어떻게 흔들고, 어떤 깨달음을 주었으며,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서평’이었다. 나에게 서평은 더 이상 책에 대한 평가나 요약이 아니었다. 그것은 책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행위여야 했다.


이 좌절과 깨달음의 과정 또한 하나의 글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실패담을, 나의 부끄러움을 용기 내어 기록한다면, 어쩌면 과거의 나처럼 숫자 앞에서 좌절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먼지가 쌓인 노트북을 열고 아주 오랜만에 블로그에 접속했다. 그리고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정해져 있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그 책들의 이야기. 조회수는 보지 않았다. 누가 읽어줄까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오직 나를 위한 글이었다. 나의 좁은 세계관을 깨뜨리기 위한, 이 지긋지긋한 패배감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나 자신에게 건네는 처방전과 같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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