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제 세계의 중심에는 『카르세아린』이라는 판타지 소설이 있었습니다. 동네 오락실의 유혹을 뿌리치고 차곡차곡 모은 동전으로 사 모은 책들이 책장에 한 권씩 늘어갈 때마다, 제 안에서는 이야기가 가진 마법에 대한 경외심이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뼛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운명 같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부엌에서 분주하게 회를 뜨시던 어머니의 등을 향해 비장하게 그 꿈을 고백했습니다. 잠시 칼을 내려놓은 어머니는 제 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하지만 걱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그거, 돈 벌기 힘들 텐데?”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날카로운 칼끝이 되어 제 꿈의 가장 연한 부분을 찔렀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막연했던 동경의 자리에 ‘생활’과 ‘현실’이라는 이름의 두려움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제 첫 번째 꿈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서랍 깊은 곳에 처박혔습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거쳐야 하는 관문을 지나고 나니 현실의 벽은 더 높고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의 ‘작가병’은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본 작가들의 수필은 하나같이 ‘글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비명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꿈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루 일하면 그날로 딱 끝나는, 미련 없는 직업을 갖자.’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공장 면접에서는 모조리 고배를 마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회사에 반신반의하며 면접을 봤고, 덜컥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직장 생활이 오늘로 16년째입니다. 매일 무언가를 보고, 배우고,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삶. ‘언젠가 모든 것이 안정되고 준비가 되면…’이라는 막연한 주문을 외우며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꿈만 꾸며 보낸 시간이 16년이 된겁니다.
더 이상 ‘다음’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는 써야 합니다. 핑계와 변명으로 쌓아 올린 벽을 허물고, 그저 써야만 합니다. 요즘은 회사의 미래도 불투명해 마음이 무겁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불안감이 저를 더 절박하게 만듭니다. ‘이 힘든 시기에 작가의 꿈까지 짊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사치입니다. 고민할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써야 하니까요.
한때는 이미 멋지게 두 개의 삶을 살아내는 작가들을 보며 자책하고 푸념만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들은 두 개의 삶을 위태롭게 저글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 온전히 엮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저도 오늘 밤, 퇴근 후 제 책상으로 다시 출근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일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나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나’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어둠과 고요 속에서 들리는 타자 소리만이, 30년을 묵혀 녹슬어버린 꿈을 벼려내는 유일한 소리입니다.